역사관

'유교의 스승' 공자의 탄생

기산(箕山) 2010. 1. 3. 14:05

'유교의 스승' 공자의 탄생

 

지금으로부터 2560년전 9월 28일, 춘추시대 말기에 중국 노나라 추읍창평향(陬邑昌平鄕),

지금의 산동성 곡부시(山东省 曲阜市)에서 동남쪽으로 떨어진 노원촌(鲁源村)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바로 아시아적 가치관인 유교의 시조로 떠받들어지는 공자가 탄생한 것이다.

 

 

 

 

 

 

 

 

 

 

 

 

 

 

 

 

 

 

 

 

 

 

 

 

 

 

 

 

공자의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로 흔히 공부자(孔夫子)로 불린다.

공자의 아버지는 숙량홀(叔梁纥叔은 자이고, 흘은 이름)이며, 어머니는 안징재(颜徵在)이다.

숙량홀은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 군공(軍功)을 세운 부장(部將)으로 시씨(施氏)와 결혼하여

아들 없이 딸만 아홉을 낳았고, 첩을 얻어 맹피(孟皮)라는 아들을 얻었지만 족질(足疾)에 걸렸다.

그런데 당시 여자와 족질에 걸린 아들은 후사를 이을 수가 없다는 관습에 따라

숙량홀은 그의 친구의 딸인 안징재와 결혼하였다.

당시 숙량홀은 70대였고 안정재는 16세에 불과하였다. 

안징재는 이구산(尼丘山)에 남몰래 치성을 드려 공자를 낳았다.

공자의 머리가 움푹 들어간 짱구였기 때문에 공자의 이름을 구(丘)라고 하였다.

키는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따르면 9척6촌(약188센티미터)

'장인(長人)'이라 기술된 것으로 보아 장신이었던 것 같으며,

후세에 남겨진 공자의 초상을 보면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공자의 유년시절은 가난과 외로움으로 그 자체였다.

세 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매우 가난해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장례식마저 제대로 치르지 못할 형편이었다.

하지만 마을의 늙은 선생 밑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였으며, 《논어》에서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十有五而志于學)고 회상할 정도로 10대에 이미 향학열로 이름이 높았다.

공자는 17세 때부터 호구를 해결하기 위하여 창고를 관장하는 위리(委吏),

나라의 가축을 기르는 승전리(乘田吏) 등 말단관리를 하면서

노나라의 대학에서 《시경》과 《서경》을 비롯해 음악 등 다양한 학습을 하였으며

19세에 가정환경이 비슷한 여인과 결혼했다.

공자는 그의 나이 24살 되던 기원전 528년에 어머니를 잃는다.

16세에 시집와서 40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안징재는 공자의 처량한 신세를 생각하여

쉽게 숨을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공자는 어머니를 방(防) 땅에 아버지와 합장하여 묻고 삼년상을 지낸 뒤

또 2, 3년 지나서야 세상에 나와 다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다. 

공자는 자신이 꿈꾸는 세상인 예(禮)와 덕(德)과 문(文)이 지배하는 사회를 구현하고

그의 재능을 알아주는 주군을 찾기 위해 14년 동안 제자들과 온갖 고초를 무릅쓰고

위·송·조·정·진·태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였지만 결국 실패하였다.

그래서 67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며 저술과 편집에 몰두하면서

고전의 전통을 보존하는 일에 열중했다.

《사기》에 따르면 그의 제자 중 72명이 '육예(六藝)'를 통달했고

제자로 자처하는 사람의 수가 3,000명을 넘었다고 한다. 

공자는 기원전 479년 그의 나이 72세에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고

현재 곡부시 공림(孔林)에 묻혀있다.

2560년이 흐른 2009년 공자후손은 한국인 3만 4,000여 명을 비롯해 200만 명에 이른다.



전북차이나클럽 회장/전북중국문화원 원장

 

------------------------------------------------------------------------------------------------

 

자왈(子曰) 중(衆)이 호지(好之)라도 필찰언(必察焉)하며

               중(衆)이 오지(惡之)라도 필찰언(必察焉)이니라.

 

 

 

                                                                                            한빛일보

webmaster@hvnews.co.kr

 

▶ 해석:
공자께서 말하기를 많은 무리가 그를 좋아해도 반드시 그를 살펴봐야 하며,
많은 사람이 그를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그를 살펴야 하느니라.

 

▶ 한자공부:
중(衆)-무리, 많다.
찰(察)-살피다, 드러나다, 자세하다, 깨끗하다.
오(惡)-미워하다, 헐뜯다, 부끄러워하다, 어찌, 모질다(악), 나쁘다(악), 흉년들다(악), 못생기다(악).

 

▶ 보충학습:
언(焉)은 단정을 나타내는 종결어조사이다.

 

▶ 현실적용:
사람은 군중심리에 따라 좌우되기 쉽다.
실제 자기가 경험하거나 확인하지도 않은 일을 들은 풍문(風聞)만 믿고 속단하거나
잘못된 정보에 의한 선입견을 가지고 남이 좋다고 하면 무조건 좋아하고
남이 미워하면 무조건 미워하는 경향이 많다.

 

공자께서는 이것을 크게 경계하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어떤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여겨 좋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아 하지 말고
반드시 잘 살펴 본 연후에 스스로 판단해 좋아할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결정하라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주관이 확고해야 한다.
아무리 대중이 다 좋아하는 것이라도 자기 주관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심지가 굳어야 한다.

 

군자는 화이불류(和而不流)라 했다.
군자는 남들과 서로 화합해 조화로운 처신을 하되 주관 없이 휩쓸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다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살펴 본 연후에 미워하거나 싫어할 것을
판단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호불호(好不好)에 대해 흑백 논리가 심하다.
시시비비를 살피지 않고 한 번 좋아하면 마냥 좋아하고 한 번 싫어하면 대책 없이 싫어한다.
이러다 보니 지나고 나서 후회한다.
좋아하는 사람도 따지고 보면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미워하는 사람도 잘 살펴보면 다 미워할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눈을 크게 뜨고 상하좌우내외를 살펴보며 냉철한 이성으로 호불호를 판단하며 살자

 

 

김홍철 청주대 사범대학 한문교육과 교수

jukr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