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특집> 뤼순감옥서 부활한 안중근
연합뉴스 | 입력 2009.08.13 06:41 | 수정 2009.08.13 11:34
(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안중근 의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중국의 뤼순(旅順)감옥에서 100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아 안 의사를 비롯, 뤼순 감옥에서 숨진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아 안 의사를 비롯, 뤼순 감옥에서 숨진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저격하고 체포돼 3월 26일 순국할 때까지 5개월간 수감됐던 역사적 현장이다.
일제시대 때 안 의사를 포함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은 물론 중국 등 11개국의 항일 운동가들이
수감됐던 뤼순감옥을 중국 정부는 '뤼순 일아(日俄)감옥 구지(舊地) 박물관'으로 명명,
항일운동의 주요 국가 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해왔지만 그동안 군사기밀 보호 등을 이유로
외국인의 방문을 불허해왔다.
올해 중국 정부가 외국인 개방을 전면 허용한데 이어 안 의사를 중심으로 국내 독립운동가들을
올해 중국 정부가 외국인 개방을 전면 허용한데 이어 안 의사를 중심으로 국내 독립운동가들을
추모하는 공간까지 마련되면서, 만주벌판을 누비며 일제의 탄압에 항거했던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애국 정신과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됐다.
8월의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10일 찾은, 다롄 남단에 위치한 뤼순감옥은
8월의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10일 찾은, 다롄 남단에 위치한 뤼순감옥은
찾아 오는 방문객이 적어 한산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쇠창살이 둘러처진 높다란 회색 담장 가운데로 난 감옥 문을 들어서자마자
쇠창살이 둘러처진 높다란 회색 담장 가운데로 난 감옥 문을 들어서자마자
붉은 색 벽돌로 세워진 낡은 일본식 본관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2층으로 이뤄진 감옥은 쇠창살 문이 남아 있는 감방들과 좁은 통로 등이
2층으로 이뤄진 감옥은 쇠창살 문이 남아 있는 감방들과 좁은 통로 등이
미로처럼 연결된 채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하면서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안 의사 추모관과 기념관은 감옥 문을 들어서서 본관 건물에서 우측으로 200m 가량 떨어진 곳에
안 의사 추모관과 기념관은 감옥 문을 들어서서 본관 건물에서 우측으로 200m 가량 떨어진 곳에
나란히 위치하고 있었다.
당초 중국 항일운동가들을 기리기 위해 '순국 중국인 항일지사 전시관'이 들어섰던 자리로
당초 중국 항일운동가들을 기리기 위해 '순국 중국인 항일지사 전시관'이 들어섰던 자리로
2007년 11월 중국 당국이 이 전시관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비게 된 공간이었다.
안 의사 연구에 매달려온 다롄(大連)대 유병호 교수가 이전 계획을 포착,
안 의사 연구에 매달려온 다롄(大連)대 유병호 교수가 이전 계획을 포착,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등과 함께 뤼순감옥 측과 협의해 에 나서면서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다.
지난 3월 보훈처의 지원을 받은 광복회가 1억5천만원을 들여 건립에 나선 지 5개월여 만에,
지난 3월 보훈처의 지원을 받은 광복회가 1억5천만원을 들여 건립에 나선 지 5개월여 만에,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안 의사를 비롯한 항일독립운동가들이 숨져간 뤼순감옥 내에
그들을 기리는 추모관과 전시관을 세울 수 있었다.
이 추모관과 전시관은 오는 10월 24일 개관식을 갖고
이 추모관과 전시관은 오는 10월 24일 개관식을 갖고
이틀 뒤인 26일에는 '하얼빈 의거 100주년' 기념행사도 이곳에서 열린다.
100㎡ 남짓한 추모관은 푸른빛이 도는 백두산 천지를 담은 대형 화면을 배경으로
100㎡ 남짓한 추모관은 푸른빛이 도는 백두산 천지를 담은 대형 화면을 배경으로
안 의사의 흉상이 모셔져 있었다.
좌우 벽면에는 그가 뤼순감옥에서 수감돼 있던 동안 남긴 200여점의 필사 유묵(遺墨)들로
가득 채워져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전시실 우측에 마련된 600㎡ 규모의 전시관은 '국제항일열사전시관'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전시실 우측에 마련된 600㎡ 규모의 전시관은 '국제항일열사전시관'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중국 당국이 외국인 이름을 딴 전시관 설립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자 구릿빛의 안 의사의 흉상이 세워져 있고
그러나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자 구릿빛의 안 의사의 흉상이 세워져 있고
그의 항일운동 사료와 기사들을 정리한 전시물들이 가득 채워져 있어
한인애국단에서 활동했던 유상근.최흥식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의 흉상과 사료들을 소개하는
총 4개의 소규모 전시실로 나뉘어 있었다.
안 의사가 처형되기 전까지 수용됐던 독방은 본관 건물과 전시관 사이
안 의사가 처형되기 전까지 수용됐던 독방은 본관 건물과 전시관 사이
간수부장 당직실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 일어 등 4개 국어로 안 의사가 수감됐던 곳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었다.
쇠창살이 있는 유리창문 너머로 보이는 6㎡ 남짓한 방 안에는 안 의사가 사용했던
쇠창살이 있는 유리창문 너머로 보이는 6㎡ 남짓한 방 안에는 안 의사가 사용했던
사형 집행이 앞당겨지면서 완성하지는 못했다.
'독립',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 등 200여점의 유묵을 남긴 곳도 이 방에서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숨결을 남겼던 20㎡ 규모의 처형장도 감옥 내에 복원됐다.
뤼순 감옥에는 모두 3개의 교수형장이 존재했는데 '7개의 계단에 올라 의자에 앉아
'독립',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 등 200여점의 유묵을 남긴 곳도 이 방에서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숨결을 남겼던 20㎡ 규모의 처형장도 감옥 내에 복원됐다.
뤼순 감옥에는 모두 3개의 교수형장이 존재했는데 '7개의 계단에 올라 의자에 앉아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당시 언론 보도 내용을 근거로 찾아낸 곳이다.
교수형을 당할 때 앉았던 나무 의자와 올무는 물론 교수대에 올랐던 7개의 계단,
교수형을 당할 때 앉았던 나무 의자와 올무는 물론 교수대에 올랐던 7개의 계단,
안 의사의 기개를 높이 평가하며 추모한 글들의 필사본들로 채워져 있었다.
중국에서도 안 의사를 높이 평가해왔음을 실감케 하는 장면이었다.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아, 안 의사가 숨을 거뒀던 뤼순감옥 내에 추모관과 전시관이 세워졌다는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아, 안 의사가 숨을 거뒀던 뤼순감옥 내에 추모관과 전시관이 세워졌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상당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집행 예산이 대폭 축소되는 바람에 안 의사의 일대기를 동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는
집행 예산이 대폭 축소되는 바람에 안 의사의 일대기를 동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는
스크린 설치가 무산됐고 안 의사 생전의 모조 유품들을 전시하려던 계획도 취소됐다.
안 의사의 유해 발굴은 기약도 할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더욱 크다.
보훈처는 2006년 현지 실사를 통해 매장 추정지를 확인하고도
안 의사의 유해 발굴은 기약도 할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더욱 크다.
보훈처는 2006년 현지 실사를 통해 매장 추정지를 확인하고도
발굴을 미루다 아파트 건립공사가 시작되자 중국 당국에 부랴부랴 공사 중지 요청을 하고
지난해 3-4월 발굴 작업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이미 이 곳에는 20층 규모의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어 추가 발굴이 불가능하게 됐다.
새로운 고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추가 발굴 계획이 없다는 것이
새로운 고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추가 발굴 계획이 없다는 것이
보훈처의 입장이어서 안 의사 유해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안 의사 추모관과 전시관 건립 실무를 맡았던 유병호 교수는
안 의사 추모관과 전시관 건립 실무를 맡았던 유병호 교수는
"안 의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바로 그 장소에 그를 기리는 시설을 갖추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pjk@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haohao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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