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관

태종 이방원

기산(箕山) 2009. 7. 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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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은 빛나는 다음 시대를 열기 위한 일이라면

어떠한 악업(惡業)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미 세자의 지위에 있었던 큰 아들 양녕대군(讓寧大君)을 물리치고,

셋째 아들 충녕대군(忠寧大君-세종)을 후계자로 발탁한다. 

태종 이방원은 장자인 양년대군을 폐하여 궐 밖으로 내친다.

오직 정의롭고 평화로운 다음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불굴의 용단이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어갈 세종시대에 방해가 될 만한

세력들을 찾아서 극형으로 처단한다.

민무구, 민무질 등 친 처남 네 사람에게

사약을 내려서 죽게 한 것은 범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일로 왕비 원경왕후(元敬王后)가 분노한다.

그러나 태종은 ‘폐비(廢妃)’할 것을

입에 담으면서까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뿐만이 아니다. 다음 대의 임금이 될

세종의 장인인 국구(國舅-나라의 사돈) 심온(沈溫)에게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왕명을 내려서 죽게 하였고,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평생의 동지 이숙번(李叔蕃)까지

귀양을 보내면서는 ‘내가 죽은 지 백년이 넘지 않으면

이숙번에게 도성의 땅을 밟지 못하게 하라’고 단호하게 명했다.

태종 이방원은 다음대의 임금인

세종의 치세에 아무 하자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이 들었을 때,

임금의 자리에서 물러난다. 춘추 50세,

태종은 상왕으로 물러나면서 세종을 불러서 말한다.
"천하의 모든 악명(惡名)은 이 아비가 짊어지고 갈 것이니,

주상은 만세에 성군(聖君)의 이름을 남기도록 하라!"

지도자의 자질이 무엇인가를 명쾌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리더십은 이론이 아니라 그대로 실천임을 입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