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폐해 일화 - 미국 초유의 쌀 파동
권종상 jongsang**** 번호 43541 | 2008.11.06
오바마가 당선되고 나서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이
과연 이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지난 5월달, 저는 미국 와서 처음 겪는 황당한 일을 겪었더랬습니다.
그때, 전화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가 꽤 급박했습니다.
"허니, 큰일났어!"
순간 저도 본능적으로 몸이 긴장상태가 됩니다.
"뭐야, 무슨 일인데?"
아내의 거의 패닉어린 목소리.
"코스트코에 쌀이 떨어졌어!"
헉... 갑자기 긴장이 풀리며 허무한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이거... 뭐야...
미국에서 살면서 겪는 사상 초유의 사태, '쌀 파동'이란 걸 겪으면서 별 생각을 다 했었습니다.
원래 미국은 쌀이 정말 흔한 나라입니다.
마켓에 가도 산더미같이 쌓아놓은 쌀포대에 질려버릴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정말 마켓에 가도 쌀이 없었습니다.
코스트코의 경우, 가끔씩 쌀이 나오지만 금방 동이 나 버리곤 했습니다.
특히 미국 쌀은 있어도 한국인과 일본인이 먹는 '미디엄 그레인' 종은 말 그대로
씨가 마른 듯 했습니다.
이 때문에 설마 집에 쌀 떨어지랴 하고 느긋하게 있던 저희는 느닷없는 쌀 파동의
피해자가 된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저는 캘리포니아의 쌀농사 지대를 자동차를 몰고 지나가본 적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고속도로를 몇시간씩 계속 타고 달려도 끝나지 않는 벼의 물결을 바라보며,
속으로 정말 대단하다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먹을 것이 풍부하고 무엇이든지 풍성하다는 이 나라에서 겪고 있는 쌀 파동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뭐, 누구 말대로 쌀 안먹어도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것 저런것 안 가리고 먹을 수 있는 관대한 입을 가진 저에게, 쌀이 떨어진 것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쌀이 느닷없이 똑 떨어져 버림으로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식당업주들은 코스트코 등 대형 업체에서 느닷없이 내린 쌀 구입 제한 조치 때문에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당시 대형 유통업체들은 일인당 살 수 있는 쌀을 50파운드 들이 백 4개 이내로 제한해 버림으로서,
비즈니스 자체에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버렸습니다.
(그나마 한인 마켓들은 1인당 1포로 제한해 버렸습니다)
특히 소형 테리야키 등 소규모, 소자본의 영세 업체들의 타격이 심각한데,
이들은 궁여지책으로 비교적 구하기 쉬운 안남미로 지은 밥을 내 놓는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갑자기 생활의 전면에서 우리가 먹는 쌀이 사라지거나, 혹은 터무니 없는 가격으로 뛰어 버린 것을
목격한 우리는 이제서야 어떤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건지를 제대로 알게 되는 셈입니다.
이른바 '부시의 미국'이 어떤 식으로 서민들의 목을 옥죌 수 있는지가 그대로 나옵니다.
그 당시 코스트코 주유소에서 가격이 갤런당 $3.55 까지 뛰었더군요. 나중엔 거의 갤런당 5달러까지 뛰었었지요(요즘은 $2.50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우유와 휘발유의 가격이 같아진 것이지요.
모든 생필품 가격은 계속해 오르고 있고 여기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민주당에게
당시 부시는 간단히 "배째라"고 말함으로서, 그가 모두를 허탈하게 만드는 허무개그에도
상당한 자질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문제는, 그의 이같은 허무개그가 개그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의식있는 사람들을 그가 이라크 전쟁을 시작했을 때 이같은 일이 다가올 수 있음을
경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로 나타났을 때, 우리는 지금 이렇게 당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내적으로는 부시의 실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 이렇게 파탄으로 향하고 있는
서민경제의 실물변화로 나타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명분없는 전쟁에 손을 대고
세계 여기저기에서 호전적 정책을 펼친 미국이 결국 세계의 모든 평화를 애호하는 이들에게
두들겨 맞아 망신을 당하는 모습입니다.
그건 그렇다고 합시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에게서 쌀을 빼앗아갔을까요.
대답은 간단하진 않을 것 같지만, 나름으로 생각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일단은 정말 곡물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기근 지역의 확산은 차치하고라도, 밀이나 쌀을 길러 오던 지역에서 경제성이라는 이유로
옥수수를 대량으로 심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천정부지로 오르는 석유값이 한 몫을 하는 것이지요.
옥수수를 심어 에탄올을 만들고, 그것으로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연료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요즘의 대세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걸 보면서 웃긴다 생각되는 건, 옥수수 농사라는 것이
'석유를 잡아먹는' 농사라는 것입니다.
농약도 그렇고 그 넓은 들에서 일하면서 쓰는 트랙터나 기타 장비들도
석유깨나 잡아먹는 기계들이지요.
즉, 석유를 펑펑 써 가면서 석유를 대체할 에탄올을 만들겠다고 하는 꼴이니
제가 보기엔 정말 어불성설입니다.
그 뒤에는 이른바 '시장원리'라는 것, '이윤'을 내야만 돌아가는 시장경제라는 것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실 전세계적으로 곡물 생산량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양이었지만,
팔지 못할 바엔 버려버리는, 잔인한 시장경제의 시스템은 무조건 '이윤'을 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른바 신자유주의 경제의 도래로 인해 세계 경제 시스템의 분업화가
더욱 세분화되어 이루어지면서,
미국과 호주 등에서는 밀을 경작하고, 남미에서는 제 1세계에서 소비할 커피를 생산하고...
하는 식으로 개개의 지역에서 식량 자급자족에 필요한 농사를 짓기보다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필요한 것을 특정 국가가 맡아 조달하는 시스템이 강화되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또 중국이나 인도 등 인구가 많은 국가들의 고기 소비량이 늘어났다는 것도
이 사태에 한몫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고기를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가축을 길러야 하는데, 이 때문에 곡물을 경작해야 할 경작지에
목초와 다른 사료용 작물들을 심음으로서 사람이 먹을 식량 생산이 줄어드는 것이지요.
자,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곡물 부족 현상은 각 국가들이 자체 생산하는 곡물을
밖으로 반출하지 않고 자기들이 꽁꽁 묶어 가지고 있으려는 움직임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당연히, 투기자본이 이를 따라 움직였겠지요.
이들은 자기들이 '먹지도 않는' 곡물을 매점 매석해버렸고, 이에 따라 곡물파동이 발생,
우리가 피해를 입었던 것입니다.
곡물파동은 몇달만에 끝났습니다.
투기를 위해 매점매석된 곡물들은 차익실현의 목적으로 풀렸고, 가을이 되어 햅쌀이 출하됐지요.
하지만 그 몇달동안, 서민들은 죽어났었습니다.
그들의 이룬 차익에 대해, 우리는 실물 가격에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차액을 메꾸어 나가야만 했지요.
문제는, 이같은 곡물파동으로 인해 그러잖아도 원조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기근이 만성화된 나라들의 죄없는 국민들입니다.
단지 거기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굶고 죽어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살 빼겠다고 다이어트 하는 제 모습이 죄악의 덩어리로까지 느껴집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신자유주의 경제에 올인을 했습니다.
이미 고기는 개방됐고, 이제 쌀도 개방으로 가게 될 듯 합니다.
하지만, 식량주권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중요한지는,
그때의 곡물파동으로 인해 여실히 드러났다고 보입니다.
이런 훌륭한 교훈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또 농산물시장을 더 개방하자 한다면,
그걸 그대로 내 일 아니라며 바라만 보고 있던 사람들 역시 제가 입은 것 같은 피해를 보며
그제서야 뭔가 깨닫게 될 듯 하여 안타깝습니다.
세계는 이제 오바마의 등장으로 보호주의 정책으로 갈 것이 분명히 전망되고,
지금까지 자유무역 기조에서 방향을 바꾸어 보호무역을 위한 규제들도 더욱 강하게 될 것이지만,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는 완전히 거꾸로 뛰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문제는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앙가주망(참여)'과 '연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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