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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의 투자 적기', 내게도 맞는 말일까?

기산(箕山) 2008. 10. 31. 03:59

'100년 만의 투자 적기', 내게도 맞는 말일까?

 

                                                                                     2008년 10월 30일(목) 11:07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이광구 기자]

한국증시는 최근 코스피 1000선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사진은 지난 24일 오전 장중 주가 1000선이 붕괴된 가운데 오후 1시 16분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시황판에 코스피지수가 950.74로 표시되고 있다.

ⓒ 권우성

 

<논어>에 이런 구절이 있다.


'빨리 효과를 보려고 하면 바라는 효과가 나오지 않고, 작은 이익을 보려고 하면

큰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欲速 則不達, 見小利 則大事不成)'


이 말은 공자가 정치에 대해 한 말이지만, 나는 이것을 개인의 재무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투자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자칫 말 그대로 '공자님 말씀'이 될 수 있어서 조심스럽다.

그런 위험을 피해갈 방법으로 나는 내가 직접 하고 있는 개인 재무 상담 사례를 거론하며

재무 설계 관점에서 살펴볼 것이다.

아울러 "100년 만의 투자 적기"라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관점을

인류의 고전인 <논어>의 관점을 빌어 발전적으로 비평해 보려고 한다.


열흘 전쯤 공기업 다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직장 동료가 펀드에 1억 원쯤 투자했는데, 지금 평가액이 3천만 원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재무상담을 받으면 도움이 되겠느냐는 걸 묻는 전화였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슨 재주로 그걸 해결해 주겠나?'

그런데 사정을 듣다 보니 잃은 돈을 당장 회복시켜 주지는 못하지만,

삶을 포기하지는 않게 해줄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희 회사 다니는 사람이 7천만 원 손해 봤다고 인생 망가지는 거 아니야.

국민연금 최고등급이고 퇴직금 있고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돈 벌 수 있잖아.

손해 본 거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재무 처지를 잘 살펴보고 앞으로 계획을 점검해 보면서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나의 말에 친구도 동의했다.

사실 옆에서 보자니 동료가 정신이 없는 것 같아서 진정시킬 필요를 느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후로 아직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 동료가 내 지적처럼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하지 않고

계속 수익으로만 회복하려고 하다 보면, 박현주 회장 말이 귀에 번쩍 들릴 것이다.

그래서 요행히 손실을 만회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예측이다.


"100년 만의 투자적기"란 말은 외부조건에 대한 평가다.

그 평가가 맞다 하더라도 개인의 주체적인 조건이 그것을 받을 형편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림의 떡일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성급하게 달려들어 자신을 망치게 하는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지적은 누구나 아는 '공자님 말씀'인 듯하고,

아래 두 상담 사례를 통해 개인이 어떤 조건을 마련해 두고 어떤 관점을 취할 때

외부조건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사례 ①] 1년 만에 44% 손해 본 주부

신혼주부인 김하영(가명·32)씨는 지난해 10월에 자신이 관리하고 있던 목돈 1700만원을

5개 펀드에 나눠 투자했다.

신혼 초에 종잣돈을 열심히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생활비를 아껴 월 10만원씩 붓는

적립식펀드도 하나 가입했다.

최근 주가가 폭락하면서 손해가 커져 재무상담을 신청했는데, 그때 확인한 수익률이 -44%였다.


두 번째 상담 때 다시 수익률을 확인하고 왔다고 한다. 전 주보다 더 떨어졌다며 울상이다.

나는 김씨에게 이렇게 말하며 의향을 물었다.


"주식투자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이 있는데,

산 가격은 잊어버리고 지금 돈이 더 있다면 현재 갖고 있는 종목을 살 것인지를 판단해서

환매할 것인지를 결정하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다음은 재무설계 관점인데요, 돈이 필요한 시기를 봐서 환매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당장 쓸 돈이 급하다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팔아야겠지요."


사실 샀을 때 가격을 잊어버리라고 하지만 이게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잊어버릴(?) 만큼 멍청하지 않다.

그렇지만 김씨는 내 앞에서는 산 가격은 잊어버리고 생각한다며 더 갖고 있겠다고 했다.

더 떨어질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오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지금 돈이 있으면 그 종목을 사겠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

내가 말한 두 번째 조건인 돈 쓸 시기와 관련해서 김씨는 3년 후에나 목돈이 필요하기에,

그 사이에는 어떻게든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대답한 것 같았다.


지금 팔면 손해가 확정되는 것이지만, 갖고 있으면 확정되지는 않는다.

이럴 때 사람들은 손해가 확정되는 선택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이론이 떠올랐다.

그래서 김씨 관점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돈이 더 있으면 사겠다는 판단을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1년 전에 샀을 때와 비교할 때

지금 사면 나중에 값이 더 떨어져도 1년 전에 산 것보다는 훨씬 적게 손해 본다.

김씨가 이런 것을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직감으로 그렇게 느끼고 있는 듯했다.

나는 더 시비를 걸지 않고 그러라고 했다.



'투자 적기'만큼 위험한 단어는 없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 미래에셋 제공


박현주 회장이 "100년 만의 적기"라고 했을 때는

이런 이론이 뒷받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1년 전에 샀을 때보다는 훨씬 적게 손해 보는

투자시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곧 시세가 오를지 수년 동안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평상시 고객들에게 적어도 3년 후에 돈을 쓸 일이 있는 거라면

일정 금액을 펀드나 주식에 투자할 것을 권한다.


거기에는 주식 시세변동의 주기가 3년이라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데 일본에는 10년짜리 장기 불황도 왔었다.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경우까지 가정한다면 '투자 적기'란 표현은

매우 위험한 분석이다.

그 불확실함을 담보해 주는 것이 바로 재무 설계

관점에서 본 돈을 쓸 기간과 금액이다.


김씨는 3년 후 전세자금으로 1억5천만 원이 필요하다.

현재 전세금과 지방의 소형주택을 처분하면 약 1억1천만 원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준비자금이다.

그런데 지금 예상하는 전세자금이 3년 동안 오를 것이란 점,

그동안 자동차를 새로 마련하는 등의 크고 작은 일에 들어갈 자금 등을 다 감안하면

약 7500만 원이 모자란다.

물론 평가액이 원금의 반 가까이로 줄어든 펀드와 예금도 연 6% 정도 수익으로 계산에 넣은 것이다.


금융 지출은 명확하고, 생활비를 추정해서 소득에서 빼보았다. 약 70만 원이 남는다.

그런데 그동안 그 돈이 통장에 잔고로 쌓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돈도 알게 모르게 생활비로 지출됐다고 봐야 한다.

이 대목에서 김씨가 내게 해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설명했다.


"그동안 갑자기 목돈이 많이 들었어요.

시댁에 에어컨 사드렸고, 치과 치료도 받았고 학원비도 꽤 나갔어요."


그런 비용이 또 생길 거라고 가정하면 남는 돈 70만 원을 다 저축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많아야 40만 원 정도일 것이다.

그 정도 저축이라면 위에서 말한 부족 자금을 채우기엔 크게 모자란다.

김씨도, 이런 수치를 정확히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조급하게 높은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떨쳐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빨리 효과를 보려다 오히려 손해를 본 셈이다.



'빨리', '빨리'만 외치다간 손해만...

빨리 효과를 보려고 했다는 것은 김씨가 고른 펀드 종목에서 엿볼 수 있다.

거치식 5개 가운데 3개는 미래에셋이 운용하는 해외펀드인데, 다 중국과 관련된 것이다.

1년 전 그 펀드들의 수익률은 최고점이었다.

전체 자금의 50% 이상을 해외펀드에 넣었는데, 그 수익률은 -60% 전후다.

그에 반해 국내펀드 2개의 수익률은 -40% 이하다. 적립식펀드 1개의 수익률은 -30%다.


이 상태에서 재무설계식 해법을 두 가지로 찾을 수 있다.

 

첫째, 저축률을 높이는 것이다.

수입을 당장 늘리는 것은 곤란하고, 생활비에서 가능한 줄여보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어디에 썼는지 모르는 알 수 없는 지출을 잡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저축을 할 수 있다.

그것을 잡지 않고 적은 금액을 저축하면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다가는

'빨리 효과를 보려다 오히려 손해 보는' 잘못을 범하기 십상이다.

 

둘째, 돈을 쓸 일(재무목표)을 줄여보는 것이다.

전세금액과 자동차 그리고 다른 행사들의 시기나 금액을 조정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재무 목표와 저축률을 조정하지 않고 수익률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작은 이익을 보려다 큰일(재무목표/인생목표)을 놓치는' 지름길이다.


이 상태에서 나는 김씨에게 적립식펀드 금액을 늘리자고 했다.

그러나 김씨는 환매하지는 않지만, 더 넣지는 않겠다고 했다. 이제 겁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한 번 고생하면 무조건 반대 방향으로만 나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것도 역시 손해 보는 방식이다.







[사례 ②] 두 달 전에 펀드에서 손 뗀 고객

대기업에 다니는 박현석(가명·34)씨는 부모 도움 하나 없이 직장 생활 7년 동안 순자산

1억4천만 원을 모았다.

내가 쓴 책을 읽고, 혼자 할 게 아니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자는 생각에 재무상담을 신청했다.

지난 3년 동안 가계부도 꼼꼼하게 써왔고, 비과세, 세금우대, 소득공제 등 알만한 금융 지식은

다 아는 박씨인데, 특이한 것은 펀드가 하나도 없는 점이었다.


보통 자녀가 둘인 40세 전후 기혼 가정의 저축률은 약 20%다.

미혼이나 신혼초가 저축률이 높은데, 아주 철저하게 하는 경우에 60% 정도 된다.

박씨의 저축률이 60%다. 예금통장만 해도 14개다.

어머니 명의 생계형비과세 통장이 4개이고 세금우대 통장이 5개다.

나머지는 본인 명의다. 저축률만 높은 게 아니라 저축액도 200만 원이나 된다.


이 정도라면 목적 기간에 맞게 자금을 적절히 안배하면서,

다소 위험이 높은 상품도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

보통 나는 단기를 가장 안전하게 확정이자형 예금이나 적금에 넣으라고 권하고,

그 다음 장기상품은 개인 성향에 따라서 유니버셜이나 변액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3년에서 7년 정도 기간이 필요한 자금이라면 펀드나 주식을 권한다.

서울에서 대기업 다니고 저축가능액도 꽤 되는데 펀드가 하나도 없는 점을 의아해하는 내게

박씨는 이렇게 말했다.


"두 달 전에 다 찾았어요."

전에는 꽤 많은 금액을 펀드에 넣어두었는데,

올 들어 시황이 계속 나빠지면서 수익률 확인하느라 너무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최근 몸이 아팠는데 이렇게 자금의 수익률을 신경쓴 것도 한 몫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박씨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 정말 다행이다.

만약 지금까지 그냥 갖고 있었더라면 병이 더 커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100년만'이라는 수식어에 현혹되지 말자

나는 박씨에게 예금통장을 4개로 줄이자고 했다.

만기가 달라 CMA 통장에 예치하는 기간동안 이자율을 조금 손해 보더라도

그렇게 단순하게 관리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가계부도 쓰지 말라고 했다.

보통은 지출 통제가 안 되기 때문에 가계부를 최소 두 달은 쓰라고 권하지만,

박씨에게는 그 반대로 말했다.

상당히 지출 관리를 잘 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꼭 쓰고 싶다면 총액만 맞춰보라고 했다.


그리고 저축가능액 가운데 50만 원을 적립식펀드에 넣으라고 권했다.

단, 처음에 자신에게 맞는 펀드를 골라 자동이체를 해놓은 다음에는 들여다보지 말라고 했다.

말하자면 신경을 끄라는 것이었다. 박씨는 목적 자금 설계에 별 어려움이 없다.

월 50만 원 정도는 5년 이상 전혀 들여다보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재무 상태다.


'100년 만의 투자적기'는 바로 박씨 같은 사람들에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 번 손해를 경험한 박씨는 다시 펀드를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아가 박씨는 장기저축도 보험사가 폭리를 취하는 것 같다면 거부했다.

그럼 선택은 이제 비과세나 이자율을 쫓아 예금이나 적금을 하는 수밖에….


그동안 박씨가 너무 미세하게 작은 수익률까지 쫓은 나머지 다른 데 써야 할

시간과 정력을 낭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생 설계의 큰 흐름을 잡으면 되는데, 지나치게 작은 이익(小利)에 집착한 것이다.

 

사례 1과 2의 두 고객 모두 작은 이익을 쫓다 혼난 나머지,

100년 만의 투자 적기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이 정말 박현주 회장이 말하는 100년 만의 그때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숫자를 동원한 강조 화법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지금 기회를 놓친다고 인생이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재무 설계의 기본을 잘 잡아놓는다면,

즉 기간에 따른 목적 자금 설계를 한 상태에서 여유 자금을 중기에 맞게 운용한다고 생각한다면,

100년 만일지 10년 만일지는 모르지만 좀 더 큰 수익을 낼 기회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것을 빨리 얻으려는 조바심을 버려야 한다.

중심과 기본을 잃은 사람들은 또 '100년 만'이라는 수식어에 현혹당할는지도 모른다.

사기나 실패의 큰 원인은 외부보다는 내부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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