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군 조종사 토머스 패러비가 조종하는 B-29 전폭기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이어 8월 9일 커미트 비한에 의하여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폭이 투하되자, 일본은 8월 10일 일본에게 항복을 권고하는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남쪽은 미군이 점령하여 한반도 주둔 일본군 항복과 무장해제를 받아내자고 제의했고, 이는 9월 2일 연합국 사령부 고시 제1호로 채택된다. 이 작업에 참여한 미 국방성 인사는 본스틸 대령과 러스크 중령이다. 갑작스러운 일본의 항복에 의해 국무성과 군 당국은 일본항복에 관해 맥아더 장군에게 보내야 할 지령 및 기타 연합국 정부와의 협정에 대해 긴급히 검토하게 되었다. 철야회의를 열었다. 그날 회의는 밤을 새며 계속되었다. 의제는 일본항복 수리에 관한 협정이었다. 북쪽에서 항복을 수리해야 한다는 정치적 희망과 미군 진주 능력의 명백한 한계를 조화시키는 안을 작성해 오도록 요청했다. 우리는 미군 점령지역 내에 수도를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38도선을 제안했던 것이다. - '러스크 회고록' - 국가기록원은 지난 2006년 9월 정부종합청사에서 관련 시사회를 열었다.
|
'역사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단고기 중심의 단군역사 (0) | 2007.08.05 |
---|---|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0) | 2007.07.17 |
해저 유적 (0) | 2007.06.23 |
막사발이 아니라 사발이다 / 신한균 (0) | 2007.06.21 |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다리 영도교 (0) | 2007.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