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관

러시아 눈으로 본 한국전쟁

기산(箕山) 2007. 6. 25. 03:39

러시아 눈으로 본 한국전쟁

 

한국에서 공개 된 러시아 영상자료
 
소련군이 작성한 38도선
ⓒ 러시아 사진영상 기록보존소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군 조종사 토머스 패러비가 조종하는 B-29 전폭기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이어 8월 9일 커미트 비한에 의하여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폭이 투하되자,

일본은 8월 10일 일본에게 항복을 권고하는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전후처리문제를 연구 검토하던 미 국방성은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북쪽은 러시아군이

남쪽은 미군이 점령하여 한반도 주둔 일본군 항복과 무장해제를 받아내자고 제의했고,

이는 9월 2일 연합국 사령부 고시 제1호로 채택된다.

이 작업에 참여한 미 국방성 인사는 본스틸 대령과 러스크 중령이다.

나는 38도선 탄생의 '목격자'이었으므로 보다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일본의 항복에 의해 국무성과 군 당국은 일본항복에 관해 맥아더 장군에게

보내야 할 지령 및 기타 연합국 정부와의 협정에 대해 긴급히 검토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8월 10일부터 11일 사이, 국무성의 던(James C. Dunn), 육군성의 맥크로이(John J. McCloy), 해군성의 버드(Ralph Bard) 등 세 명이 펜타곤의 맥크로이 집무실에서 SWNCC

철야회의를 열었다.

그날 회의는 밤을 새며 계속되었다. 의제는 일본항복 수리에 관한 협정이었다.

맥크로이는 본스틸(Charles H. Bonesteel) 대령과 본인에게 옆방에 가서 미군이 가능한 한

북쪽에서 항복을 수리해야 한다는 정치적 희망과 미군 진주 능력의 명백한 한계를 조화시키는

안을 작성해 오도록 요청했다.

우리는 미군 점령지역 내에 수도를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38도선을 제안했던 것이다.

- '러스크 회고록' -

아래 사진은 러시아 정부가 '러시아 사진영상 기록보존소'에서 소장하고 있던 영상물들로,

국가기록원은 지난 2006년 9월 정부종합청사에서 관련 시사회를 열었다.

북한 주민의 환영을 받으며 진주하는 소련군
ⓒ 러시아 사진영상 기록보존소
북한 지역에 있던 일본군 항복과 관리를 체포하는 소련군
ⓒ 러시아 사진영상 기록보존소
북한 주민에게 모습을 드러낸 김일성
ⓒ 러시아 사진영상 기록보존소
대한민국이 5.10선거를 통하여 단독정부를 수립하자 북한도 선거를 실시했다.
ⓒ 러시아 사진영상 기록보존소
투표하는 김일성. 북한 정권이 수립되기 전이라 태극기가 있다.
ⓒ 러시아 사진영상 기록보존소
한국전쟁 직전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일성이 소련군 수뇌부의 영접을 받았다.
ⓒ 러시아 사진영상 기록보존소
김일성 방문을 수행한 북측 인사들
ⓒ 러시아 사진영상 기록보존소
서울에 입성한 북한군
ⓒ 러시아 사진영상 기록보존소
파괴된 한강철교를 복구하여 남하하는 북한군
ⓒ 러시아 사진영상 기록보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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