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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는 당나라 현종의 비다. 현종의 극진한 사랑을 받던 그녀는 안녹산의 난으로 인해 길가의 어느 불당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고 전해진다. 이백은 그를 모란에 비유했고, 백거이의 장한가를 통해서 구구절절 노래했듯이 그녀는 중국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주인공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할 때 '수화(羞花)'라고 하는데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재미있다.
양귀비가 현종을 만나기 전 정원을 거닐며 꽃구경을 하다가 "꽃들아! 너는 해마다 다시 피어나지만 나는 언제나 빛을 보겠니?"하며 눈물을 흘리며 꽃을 쓰다듬어 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꽃들이 모두 부끄러워 꽃잎을 닫아버렸다고 하는 데서 '수화'라는 말이 전해진다고 한다. 물론 이야기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서시, 왕소군, 초선과 관련이 있다고도 한다. 물고기는 물 속으로 가라앉고, 폐월수화(閉月羞花), 달은 구름 뒤로 얼굴 가리고, 꽃은 스스로 부끄러워 하네-는 참으로 재미있다. 기러기며, 달이며, 물고기까지 미녀들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나 보다.
양귀비하면 또 생각나는 것은 아편이다. 아편(Opium)은 양귀비의 설익은 열매 껍질에 상처를 내어, 흘러내려 나오는 유액이 말라 약간 굳어졌을 때 70℃ 이하에서 말린 것으로 마취약 또는 수면약 효능은 오랜 옛날부터 알려져 있었다. 유아가 지나치게 울 때는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 양귀비의 즙이 효과가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고 하니 양귀비가 사람들과 꽤 오랜 시간 가깝게 지냈다고 할 수 있겠다. 1840∼42년 아편 문제를 둘러싼 청나라와 영국간의 전쟁이 일어났고, 중국은 이로 인해 봉건사회의 기틀이 흔들리게 되었다.
미인 양귀비를 떠올리게 하는 꽃인 동시에 아편의 재료가 되는 그 양귀비는 아니었지만 원예종 양귀비를 처음 보았을 때에도 그 느낌은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꽃잎의 하늘거림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의외로 담기 힘들었고, 원예종이라 소개하지 않았다. 원산지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인 물양귀비, 그래서 '아르헨티나여 울지 말아요(Don't cry for me Argentina)'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게 하는 꽃은 꼭 소개를 하고 싶었다. 남녘 어딘가에서는 자생하고 있다고도 하니 귀화식물이라도 우리 땅에서 스스로 자라면 우리 꽃이 아닌가 싶어 꼭 만나고 싶었다. 서울시에서 튜브 같은 곳에 수생식물을 전시했던 것이다. 너무 뜻밖의 장소였고 그때는 사진기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그를 만나질 못했다. 자생지에서 만나려면 여름까지 기다려야 하고, 자생지가 먼 곳이라면 올해도 그냥 만나지 못하고 만나고 싶은 목록에 넣어두어야 할 꽃일 뻔했다.
그러나 한겨울에 그를 만났다. 화들짝 피어난 물양귀비를 만나게 된 것이다. 행운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들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도 소개하는 것이 실례는 안 될 것 같다. 사실 오늘 찍어온 '너도바람꽃'을 100번째 주인공으로 하려고 했었는데, 물양귀비가 계속 치고 올라왔다.
"너도바람꽃보다 내가 훨씬 예쁘잖아요. 너도바람꽃은 지난번 바람꽃을 소개할 때도 잠깐 등장했는데, 또 봄바람 어쩌구하면서 쓰면 재미없을 것 같아요. 저는 절세미인 양귀비도 있고, 미녀와 관련된 고사성어도 있고 게다가 아편전쟁, 아르헨티나 등 무궁무진한 소재가 있으니 금방 멋진 기사를 쓸 것 같은데. 저 어때요?" 물 위를 떠도는 삶이라고 적당히 살지 않는 그들처럼 우리들의 삶, 떠돌이 삶, 나그네 삶일지라도 살아 있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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