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관

동묘와 관운장

기산(箕山) 2006. 6. 5. 23:24
 
동묘와 관운장
 

동묘의 정문과 편액

 

중국의 고전 삼국지연의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운장을 기억할 것이다. 후한말 위나라와 오나라 그리고 촉이 고대 중국의 패권을 놓고 겨루는 삼국지는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그 삼국지의 등장인물들 중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갖게 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촉의 유비를 돕는 모사 제갈량과 함께 관우를 꼽을 것이다. 유비와 함께 소위 도원결의를 통하여 의형제가 된 관우와 장비는 친형제 이상의 끈끈한 형제애와 영웅호걸의 풍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 삼형제 중에서도 가장 영웅적인 인물은 단연 둘째인 관우, 관운장이다. 그는 지(智)덕(德)용(勇)을 고루 갖춘 장수일 뿐만 아니라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충신의 전형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누구에게나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수중의 장수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그의 명망은 송나라 때 이후 민간 신앙의 대상이 되어 중국의 곳곳에 사당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그 관운장의 사당이 우리 서울 한복판에도 버젓이 세워져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며칠 전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동묘를 찾았다.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교차하는 동묘역에서 내리니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보물 142호로 지정된 이 동묘가 바로 그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도원결의 삼형제 중의 둘째인 관우에게 제사를 지내는 묘로서 본래 이름은 동관왕묘라고 한다.

 

그런데 서울에 무슨 연유로 관운장에게 제사지내는 사당이 생겼을까? 따지고 보면 이것도 서글픈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이다. 조선 선조 때 이웃나라인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임진왜란은 7년 동안이나 수많은 우리 백성들을 죽고 상하게 하며 고달픈 삶으로 몰아넣은 지긋지긋한 전쟁이었다.

 

전쟁 말기에 조선을 도와 참전한 명나라 군대와 조선군이 합세하여 왜군을 물리칠 때 바로 관운장의 덕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명나라의 황제가 직접 편액을 보내와 공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전쟁을 도운 명분으로 자신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는 관운장을 우리들에게도 모시도록 강요받은 셈이다.

 

특이한 형식의 동묘 본관 건물

 

동묘의 건축 공사는 선조 32년부터 시작하여 2년여의 공사 끝에 완공하였다. 7년 전쟁이 끝난 후의 피폐한 재정상태와 백성들이 처한 처참한 상황에서 이런 건축물 공사를 2년 간이나 시행했으니 그 피치 못할 사정이야 짐작이 가지 않는가.

 

건축물의 규모는 앞면이 5칸, 옆면이 6칸이고 지붕은 T자형의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또 지붕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새의 날개처럼 뻗어 나오게 장식한 익공 형 양식이다. 평면의 특징은 앞뒤로 긴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과 옆면과 뒷면의 벽을 벽돌로 쌓았다는 점이 당시의 건축물로서는 특이한 형식인데 다분히 중국 건축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동묘를 찾았을 때는 동묘 안 여기저기 쉬거나 산책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공원으로 개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공원의 유래를 알고 있나 알아보려고 몇 사람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여기 관운장 묘래요. 저쪽 건물로 가보세요, 청룡도도 있어요.” 한다. 그가 가리키는 건물 안에는 정말 커다란 청룡도가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왜 관운장 묘를 이곳에 세우게 되었는지 아느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은 그저 평범한 시민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어 있는 동묘는 임진왜란이라는 민족수난의 역사가 원인을 제공하고 자신들이 섬기는 관운장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강요된 외세에 의하여 건축된 우리들이 기억해야할 서글픈 우리역사의 현장이다. (시민기자 이승철)


                               글쓴이 ; 서울마니아 http://blog.daum.net/seoul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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