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관

'불 탄 애물단지' 차 화물선의 운명은?

기산(箕山) 2019. 6. 8. 03:03

https://news.v.daum.net/v/20190607202702116?f=p


[취재후]

'불 탄 애물단지' 차 화물선의 운명은?


                                                                                       황재락 입력 2019.06.07. 20:27 수정 2019.06.07. 20:28


얼마 전 국내에서 발생한 폐기물이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돼

국제적 논란을 산 일이 있었습니다.


이후 환경부는 뒤늦게 필리핀으로 폐기물을 불법 수출한 업체에

해당 폐기물의 국내 반입명령 처분을 내렸고, 이에 대한 수사를 벌였는데요,

이번에는 그와 유사한 사건이 국내에서 일어났습니다.


자동차 운반선 '신세리티 에이스' 사건



신세리티 에이스 화재 사건

신세리티 에이스 화재 사건



지난해 12월 31일

일본 요코하마를 떠나 미국으로 가던 5만7천 톤급 자동차 운반선

'신세리티 에이스'호에서 불이 났습니다.


이 사고로 선원 5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화물선에 실려 있던 일본 자동차 3천여 대가 불에 타는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선박도 엔진이 전소되면서 자체 운항이 불가능했습니다.


보험 업계에 따르면

재산 피해 금액이 천억 원이 넘는 대형 해상 사고로 기록됐습니다.


문제는 파나마 국적, 일본 선사가 운영하던 이 선박의 국적이 한국으로 바뀌면서

일어났습니다.


선주와 선사, 화주 등에 대한 손해 배상이 끝나고,

이 선박은 국제 중고 선박 시장에 매물로 나왔는데요,

국내 한 선사가 공개 입찰을 통해 35억 원에 해당 선박을 인수했습니다.


이후 지난 2월 우리 정부의 일본 영사관을 통해 선박의 임시 국적을 취득하고

5월 중순 우리 영해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불탄 자동차 싣고 떠돌던 화물선, 통영항으로 입항



전남 신안 해상에서 예인선에 이끌려 가던 '신세리티 에이스'호

전남 신안 해상에서 예인선에 이끌려 가던 '신세리티 에이스'호



불이 났던 '신세리티 에이스'호는

화재 당시 엔진이 불에 타면서 자력으로 운항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길이 200m에 이르는 대형 화물선은

그동안 울산과 마산, 여수와 목포 등에서 정식 입항 허가를 받지 못해,

앞뒤로 예인선에 이끌린 채 남해안 일대를 한 달 가까이 떠돌았습니다.


그러다 예인선의 기름이 떨어져 가자, 지난달 말 선주가

해경에 긴급 구난을 요청하며 경남 통영시 안정국가산업단지에

입항했습니다.


화물선이 들어오자 세관과 해양수산부, 환경부 등 관계 기관은 말 그대로

비상이 걸렸습니다.


바로 화물선에 실린 불에 탄 자동차 3천여 대 때문입니다.


불에 탄 화물선에 가득 실린 '황색 폐기물'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그 처리에 관한 법률’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그 처리에 관한 법률'



환경부 등 관계 기관은

불에 탄 자동차는 국가 간 이동이 엄격히 규제되는 폐기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그 처리에 관한 법률'과

'바젤 협약'으로 불리는 국제 협약에 따르면,

불에 탄 자동차에서 나오는 폐타이어, 브레이크액, 부동액, 배터리 등은

OECD 국가 간 황색 폐기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양국 정부의 승인이 있어야 국가 간 이동이 되도록 제한하는 것입니다.


해외에서 생산된 자동차도 정식 수입 통관 절차를 위해서는 거쳐야 할 절차가 적지 않은데,

유해물질로 분류되는 불에 탄 자동차는 국가 간 이동이 엄격히 규제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관련 법에 따라 조치"... 관계 기관 뒤늦게 허둥지둥



통영 안정국가산업단지에 입항한 '신세리티 에이스'호

통영 안정국가산업단지에 입항한 '신세리티 에이스'호



해당 화물선을 인수한 선주 측은

경남 통영항에서 화물선을 수리해 다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화물선에 실린 불에 탄 자동차와 폐기물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이 과정을 취재하다 보니,

과연 저런 엄청난 양의 폐기물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수입돼도 되겠느냐는

문제와 함께 관계 기관의 대응에 매끄럽지 못한 대목이 보였습니다.


외국 수출입 화물을 담당하는 세관,

유해물질 규제를 담당하는 환경부,

해양 오염과 안전을 책임지는 해경 등

관계 기관의 공조나 협조가 부족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화물선을 인수한 선주는

울산과 전남 여수, 목포, 경남 통영 등 관계 기관에 입항 허가를 받기 위해

수차례 문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관계 기관끼리 유기적인 대응은 사실상 부족했습니다.


문제의 선박이 국내 입항을 시도한다면,

서로 실시간으로 상황을 알려주고 공유한 뒤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번 '신세리티 에이스'호의 입항 과정에서는 그런 절차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심지어 경남과 전남 등 자치단체의 경계를 벗어나자,

소위 말하는 자신들의 담당 영역이 아니라며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곳도

있었습니다.


어두운 중소 조선업체의 산실…. 애물단지 선박만 입항



통영 안정국가산업단지에 입항한 ‘신세리티 에이스’호

통영 안정국가산업단지에 입항한 '신세리티 에이스'호



한 달 가까이 남해안 일대를 떠돌던 기구한 운명의 화물선은

이제 경남 통영 안정국가산업단지에 머물고 있습니다.


경남 통영 안정국가산업단지는

법정관리 중인 성동조선해양과 폐업한 SPP 조선 등 국내 중소 조선업체의

산실로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중소 조선업체의 침체 속에 문을 닫는 조선업체가 하나둘 늘고 있고,

쇠망치를 들고 배를 만들던 근로자들은 대부분 떠나고 지금은 황량한 적막감만

감돌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에 탄 애물단지로 전락한 문제의 선박이 입항하게 됐고,

자칫 장기간 방치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인근에는 불에 탄 자동차 3천여 대를 내릴 시설도 없습니다.


몇 달 동안 바다를 떠돌다 입항한 화물선에는 폐유도 100톤 넘게 실려 있어,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2차 오염도 우려됩니다.


기구한 운명의 이 화물선이 과연 어떻게 처리될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황재락 기자 (outfocus@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