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관

냉면...

기산(箕山) 2019. 5. 24. 03:37

냉면...



평양냉면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특징적인 국수는 냉면이 아닌가 싶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국수이기 때문인데

우리처럼 일부러 국수를 차갑게 만들어 먹는 민족도 드문 것 같다.


물론 일본에도 차갑게 먹는 메밀국수인 냉소바가 있지만 우리 냉면처럼 그렇게 차갑지는 않다.

여름철 중국 음식점 메뉴로 등장하는 중국식 냉면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도록 현지화한 것이다.

원래 중국의 차가운 국수인 량몐은 사실 차가운 것이 아니라 뜨겁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국수를 차갑게 만들어 먹었을까?

냉면의 기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먼저 문자 그대로 차가운 국수라는 뜻의 냉면(冷?)이 문헌에 보이는 시기는 조선시대 중반이다.

17세기 초반, 인조 때 활동한 문인 장유의 《계곡집》에 처음으로 냉면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냉면을 먹으며 쓴 시인데, 자줏빛 육수의 냉면을 먹으면서 독특한 맛[異味]이라고 표현해놓았다.


글자 뜻 그대로 보면 평소에 먹지 못했던 색다른 맛이라는 의미겠는데,

시 한 편을 놓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독특하다는 표현, 그리고 냉면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는 사실에서 조선 중반까지만 해도 냉면이 그다지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전에도 차가운 국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냉도(冷淘)라는 음식이 있었는데 고려 말기의 목은 이색은 냉도를 먹으니 시원하다는 내용의 시를 읊은 적이 있고,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긍익도 고려의 환관들이 유두절이면 더위를 피해서 머리를 감으며 냉도를 먹었는데

그 맛이 수단(水團)과 비슷하다고 말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냉도는 중국에서 먹는 차가운 밀가루 국수 내지는 찬 수제비 종류였으니 여름철 시원하게 먹을 수는 있지만

메밀로 만든 우리 냉면과는 차이가 많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냉면은 언제 만들어진 음식일까?

조선시대 문헌에서 냉면이라는 음식이 본격적으로 보이는 것은 18세기 이후다.


다산 정약용은 면발이 긴 냉면에다 김치인 숭저(?菹)를 곁들여 먹는다고 했다.

정약용과 같은 시대를 산 실학자 유득공 역시 평양을 여행하면서 가을이면 평양의 냉면 값이 오른다고 했다.

이때면 벌써 겨울철에 접어들 무렵이라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서 냉면 값이 오를 정도로 평양 사람들은 냉면을

많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평양냉면은 냉면이 널리 보급되며 바로 유명세를 탄 모양이다.


《동국세시기》에도 겨울철 계절 음식으로는 메밀국수에 무와 배추김치를 넣고 돼지고기를 얹은

냉면을 먹는다고 소개했는데 그중에서도 관서(關西) 지방의 국수가 제일 맛있다고 했으니

바로 평양냉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다산 정약용과 유득공보다 두 세대 뒤의 인물인 실학자 이규경은 평양의 명물로 감홍로와 냉면,

그리고 비빔밥을 꼽았는데 감홍로는 계피와 생강을 꿀에 버무려 소주를 붓고 밀봉해 담그는 술이다.

40도가 넘는 독주로 감홍로 중에서는 평양에서 담근 것이 유명했다.

평양에서는 고기 안주에 감홍로를 마신 후 취하면 냉면을 먹으며 속을 풀었기에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는

말이 생겼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베이스로 해 만든 육수에 메밀국수를 말아 먹는 평양냉면은 감칠맛과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평양냉면의 특징은 꿩고기나 양지머리를 삶아 기름기를 걷어낸 후 잘 익은 동치미 국물을 같은 양으로 섞어

시원하고 감칠맛이 도는 냉면 국물에 있다.


요즘 우리가 먹는 평양냉면은 현대인의 식성에 맞도록, 또 서울 사람들의 입맛에 맞도록 바뀌어

전통 평양냉면의 맛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 본래의 맛을 기억하는 연세 드신 평양 출신 인사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다행히 서울에도 전통 평양냉면 집이 몇 집 남아 있다.

현대인의 입맛에는 밍밍하기 짝이 없는 전통 평양냉면이지만 평양 출신들에게는 중독성이 꽤 강했던 모양이다.

평양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서도 고향에서 먹은 냉면 맛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고 한다.


예전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면 김치를 가장 그리워했던 것처럼 평양 사람들도 타향에서 살 때면

문뜩문뜩 떠오른 것이 겨울에 먹는 평양냉면 맛이라고 하니까,

냉면의 맛이 그리운 것인지 고향을 그리는 향수가 짙은 것인지 그 선후를 알 수 없다 하겠다.



함흥냉면


우리나라 냉면을 대표하는 고장은 평양과 함흥이다.

예전에는 황해도 해주냉면과 경상도 진주냉면도 유명했다지만 지금은 거의 명맥만 잇는 수준이고,

평양과 함흥 두 곳의 냉면이 전국 냉면 시장을 평정했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확연히 다르다.

평양으로 상징되는 관서 지방과 함흥으로 대표되는 관동 지방의 특색이 모조리 반영된 만큼 뚜렷이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물냉면은 평양냉면, 비빔냉면은 함흥냉면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이 본질적인 차이는 아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평양냉면을 비벼서 먹기도 하고 함흥냉면을 물냉면으로 먹기도 한다.

하지만 평양냉면은 비벼 먹기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고, 반대로 함흥냉면은 비벼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구분하는 본질적 차이는 국수를 만드는 면의 재료다.

원칙대로 만들자면 평양냉면은 메밀로 면발을 뽑는 반면 함흥냉면은 메밀이 아닌 감자 전분으로

국수를 뽑는다.


지금은 평양냉면에도 메밀에 전분을 섞고, 함흥냉면 역시 감자 전분이 아닌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다고 하니

원초적인 평양, 함흥냉면에 비해 진화했다.


평양냉면은 순메밀로 만들기 때문에 구수하고 담백하며 툭툭 끊어지면서도 쫄깃한 맛이 특징이다.

반면 감자녹말로 만든 함흥냉면은 쇠심줄보다 질기면서 오들오들한 맛이 매력이다.


차가운 국수인 냉면은 원래 겨울철에 먹었기 때문에 늦가을에 추수하는 메밀로 국수를 뽑아야 제격이다.

실제로 함흥냉면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냉면들, 이를테면 해주냉면이나 진주냉면도 모두

메밀국수로 만들었다.


그런데 유독 함경도에서만 감자녹말로 국수를 뽑은 까닭에 독특한 맛의 함흥냉면이 발달했다.

이유는 함경도에서는 메밀을 대량으로 재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경도 출신 어른들의 회고에 따르면

함경도는 지형이 험한 탓에 메밀조차 재배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메밀이 부족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풍부한 감자를 갈아서 녹말로 만든 후에 국수를 뽑았는데,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감자를 재배한 지역 역시 함경도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책에서

1824년과 1825년인 순조 갑신년과 을유년 사이에 만주의 심마니들이 두만강을 넘어

함경도 땅에 감자를 심었다고 적었다.

남미가 원산지인 감자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최초의 기록이다.


그리고 함경도 회령군 수성천에 사는 사람들은 감자를 심어 양식으로 삼는다고 했다.

감자가 함경도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전해진 까닭에 함경도 음식 중에서는 감자로 만든 음식이

유독 많다.


함흥냉면 역시 그중 하나다.

함흥냉면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냉면은 아닌 것이다.


본고장인 함경도에서도 냉면 대신, 녹말국수 또는 농마국수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농마국수라고 하지 함흥냉면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은 해방 이후,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평양냉면이 크게 유행을 했기 때문이다.


평안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만들어 파는 평양냉면이 인기를 끌자 함경도 출신들도

농마국수라는 향토색 짙은 이름 대신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으로 국수를 팔았다.


심심한 맛의 평양 물냉면과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맵게 양념을 한 비빔냉면인 함흥냉면이

동시에 인기를 얻었다.


함흥냉면의 또 다른 특징은 냉면에 회를 얹는 것이다.

냉면에 홍어회나 가자미식해, 또는 명태식해를 얹어 비벼 먹는 것인데 사실 회냉면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함경도 어르신들의 기억에 따르면

회냉면이 함경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10년 전후라고 한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편인데 따지고 보면 함흥냉면 자체도 그다지 역사가 오래된 음식이 아닐 수 있다.

감자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전해진 시기를 1824년으로 보지만 종자 개량을 통해 널리 보급된 것은

1900년 전후다.


따라서 감자녹말로 국수를 만들던 함흥냉면 역시 20세기에 들어서며 발달한 음식일 것으로 짐작된다.

18세기에 이미 명성을 떨친 평양냉면에 비하면 많이 늦은 편이지만 1세기 만에 전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내용


함흥지방 향토음식의 하나인데 회냉면이라고도 부른다.

함경도와 강원도 일대는 질이 좋은 감자가 많이 산출되므로 감자를 소재로 한 향토음식이

여러가지 개발되어 있다.


함흥냉면도 그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감자녹말을 주원료로 하여 매우 질긴 국수를 만들고, 함흥지방 바닷가에서 잡히는 신선한 가자미로

회를 떠서 양념하여 얹어 먹는다. 맵게 양념하여 비벼 먹는 냉면으로 평안도의 메밀 물냉면과 대조된다.


함경도지방에서는 먼저 가릿국이 음식점에서 팔렸고, 다음에 이 회냉면이 번지기 시작하여 유명하여졌다.

6·25 이후에는 월남민에 의해서 남쪽지방에도 알려지게 되었는데, 함경도지방과는 풍토가 달라

재료에 차이가 나고 있다.


먼저 냉면국수에 들어가는 녹말이 감자녹말에서 제주도의 고구마녹말로 바뀌었으며,

회도 가자미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홍어회로 바뀌게 되었다.


본래 북쪽지방은 매운 것을 많이 먹는 식성이 아닌데 이 냉면만은 유독 매운 것이 특징이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즐겨먹는 음식이 되었다.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찬 냉면 국물에 말아먹는다.

평양은 서북부의 문화·경제의 중심지로 들이 넓어 밭곡식이 많이 나며

황해에 면하여서 어물도 많고 과일도 풍성하여 먹는 것을 즐기는 고장이다.


음식은 양념을 적게 하여 짜지도 않고 맵지도 않은 담백미(淡白味)를 즐긴다.

이러한 풍토에서 형성된 것이 바로 평양냉면이다.


만드는 법은 먼저 사골뼈를 푹 끓이다가 사태살을 넣고 삶아내어 건진다.

육수는 뼈를 골라내고 차게 식혀서 기름을 걷어내고, 고기는 편육으로 썰어놓는다.


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반반 정도로 섞어 소금·묽은장·식초로 간을 맞추어 냉면 국물을 만든다.

메밀가루와 녹말을 섞어서 익반죽하여 국수틀에 넣고 눌러서 국수를 뺀 다음

끓는 물에 삶아 건져서 사리를 만든다.


배도 얇게 썰고 동치미무도 길쭉하고 얇게 썬다.

겨울에는 통배추 김치줄기도 길쭉하게 썬다.


큰 대접에 사리를 담고 편육·김치·삶은 달걀·배 등을 얹고 찬 육수를 붓는다.

식성에 따라 식초·설탕·겨자 등을 넣어서 먹는다.


냉면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동치미 국물이다.

큰 독을 땅에 묻고 배추에 비하여 무를 많이 넣으며, 양념은 고추를 많이 쓰지 않는다.

국물은 심심하게 하고 넉넉히 부으며, 젓국은 조기젓이나 새우젓을 조금 쓰기도 하고 안쓰기도 한다.

국물이 익으면 얼음같이 차고 시원하여 냉면 국물에 적합하다.


예전에는 꿩을 삶은 국물을 이용하였으나 지금은 꿩이 귀하여 쇠고기와 사골을 쓰고 있다.

-20℃ 내외의 강추위 속에서 뜨거운 온돌방에 앉아 몸을 녹여가며 이가 시린 찬냉면을 먹는 것은

이냉치냉의 묘미가 있다.


≪동국세시기≫에서도 냉면을 겨울철 시식으로 꼽으며 서북의 것이 최고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평양 지방에서 즐기던 냉면은 6·25사변 이후 월남민에 의하여 전국에 퍼지게 되어

사계절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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