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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갔던 제비가 강남에서 눌러산다면?

기산(箕山) 2018. 4. 7. 15:39

http://v.media.daum.net/v/20180407125606527?rcmd=rn


강남 갔던 제비가 강남에서 눌러산다면?


                                                                           [한겨레] 입력 2018.04.07. 12:56 수정 2018.04.07. 13:26


[애니멀피플]

월동지 바꾸는 제비의 세계
북미 대륙까지 올라가 번식하던 제비
아르헨티나에 눌러앉아 번식 확인
35년만에 이동 생태와 생체주기 변했다



제비는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철새다. 제비가 하늘을 날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제비는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철새다. 제비가 하늘을 날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꽃 피는 봄이 되면서 강남 갔던 제비들이 우리나라로 돌아오고 있다.


제비는 해마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오는 습성이 있는데,

강남이 살기 좋다고 강남 갔던 제비들이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 눌러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제비는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광범위하게 관찰되는 흔한 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봄소식을 알리는 반가운 새로 여겨진다.


세계적으로 여섯 아종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남·북아메리카 대륙을 이동하며 산다.


여름에 북아메리카에서 둥지를 만들어 번식하고, 겨울에는 중남아메리카로 이동해

월동하며 털갈이를 한다.


그런데, 짧은 시간에 생태와 행동에 변화를 일으켜 새롭게 진화하고 있는

제비 집단이 발견되었다.


데이비드 윙클러 미국 코넬대학교 생태진화생물학 교수와 연구진은

아르헨티나의 한 제비 개체군이 35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에

이동 경로와 번식 주기를 바꾼 것을 확인하고 지난해 3월에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를

통해 발표했다.


제비들이 북쪽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북아메리카에서 번식하고 겨울이면 남아메리카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서

월동하던 한 무리의 제비가 35년 전부터 아르헨티나에서 번식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제비류가 월동지에서 번식을 시도한 적은 있지만,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은

이들이 처음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번식한 제비들이 남아메리카의 겨울에는 원래 고향인 북미로 돌아가서

월동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해보았지만,

제비 날개깃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분석해보았더니 아르헨티나에서 번식한 제비들은

남아메리카 북부를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르헨티나에서 번식한 제비의 이동 경로(A)와 북아메리카에서 번식한 일반적인 제비의 이동 경로(B). 각 달마다 다른 색으로 이동 경로를 표시했다. 데이비드 윙클러/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아르헨티나에서 번식한 제비의 이동 경로(A)와 북아메리카에서 번식한 일반적인 제비의 이동 경로(B).

각 달마다 다른 색으로 이동 경로를 표시했다.

데이비드 윙클러/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이러한 사실은 제비에게 인공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달아 실시간으로 이동 경로를 조사해

확인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제비들은 겨울철에도 남아메리카 북부를 벗어나지 않았다.


번식지인 부에노스아이레스주 남부의 남위 37.5도 부근 지역에서

제비 9마리에게 위치추적장치를 달아 날려보냈더니 9마리 모두 다른 지역으로 날아가

겨울을 보냈다.

가장 멀리서 겨울을 나는 것이 적도 조금 북쪽의 베네수엘라 해안 지역이었으며,

일부는 브라질 중부에 머물기도 했다.


이동경로를 비교해보면 크게 두 개의 경로가 확인되었는데,

여섯 마리는 남아메리카 동부 해안을 따라 이동하다가 브라질 상파울루 북쪽에서 갈라져

일부는 곧장 북쪽으로 날아 브라질 내륙을 통과했으며, 다른 일부는 계속 해안을 따라

이동했다.


나머지 세 마리는 번식지에서 바로 북쪽으로 이동해 남미 대륙의 중앙부를 가로질러

날아갔다.


새들은 월동지에 도착해서도 멀리는 아니지만 계속 움직여 다녔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지역을 월동지라고 칭하기 어려웠다.


제비들은 2월13일부터 3월6일까지 3주일 사이에 번식지를 떠났으며,

9월25일에서 10월 26일 사이에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왔다.


제비들은 모두 번식지에서 위도 20도 이상 이동해 월동했으며,

남아메리카대륙 북부로 골고루 흩어졌다.


번식지와 월동지 사이에 평균 8797㎞를 이동했다.





아르헨티나에서 번식한 제비들의 이동 시기와 경로는

북아메리카에서 번식한 제비들과는 매우 달랐다.


제비들은 35년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이동 시기와 장소를 완전히 변화시킨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번식하는 제비들은 여름에 남아메리카 온대지역에서 번식하며

겨울에는 남아메리카 북부의 열대 및 아열대 지역에서 월동하는 다른 철새들의 이동 방식과

월동지 선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최근 캐나다 동부에서 번식하는 제비에게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한 연구가 있었다.

이들은 왕복 2만㎞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고 있었다.


반면에 아르헨티나에서 번식하는 제비들은 이보다 평균 3분의 1 정도인 거리만 이동하며,

많아도 1만4600㎞를 넘지 않는다.


이동 거리가 줄어들면 에너지 소비가 주는 등 제비에게 여러가지 이로운 점으로 작용한다.


북아메리카에서 태어난 제비처럼 멕시코만이나 대서양 서부 같은 넓은 바다를 가로질러

날아야 하는 부담도 덜 수 있다.


지금 남아메리카에서 번식하는 제비 개체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연구진은 이들의 번식 성공률이 북아메리카에서 번식하는 제비들에 비해 더 나은지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눌러앉은 제비들과 여행하는 제비들의 교류


철새의 이동은 다양한 환경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데,

제비는 개체별로 이동 시기와 속도가 상당히 차이난다.


제비는 이동 중에도 먹이를 잡아먹으며 주로 낮에 이동하기 때문에

밤에 이동하는 철새가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조건과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제비는 이동을 결정하는 데 상당한 유연성을 발휘하기 때문에

남아메리카 북부의 월동지에서 먹이가 풍부하다면 굳이 먼 길을 날아 북아메리카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



아메리카 대륙에 서식하는 제비.  위키미디어코먼즈 제공

아메리카 대륙에 서식하는 제비.

위키미디어코먼즈 제공



아르헨티나에서 번식하는 제비들은

겨울에 남아메리카의 북부 일대에서 월동하며 털갈이를 한다.

아르헨티나의 번식지 일대에서 관찰되는 제비들의 대부분은

남아메리카의 여름에 털갈이를 하지 않는다.


일부 털갈이를 하고 있거나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개체도 발견되는데,

이들은 북아메리카에서 번식하고 아르헨티나로 날아온 제비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북아메리카 동부에서 온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처럼 같은 종의 제비가 북아메리카에서 계속 날아오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에서 번식하는 제비들은 유전적으로 완전히 고립되지 않으며,

새로운 종 또는 아종으로 유전자가 고정되는 속도도 더딜 것으로 판단된다.


북아메리카에서 태어나 겨울을 보내러 아르헨티나로 왔다가

그곳에 눌러앉아 번식하는 제비의 생태적 변화에 관해 여러가지 수수께기가 있다.


아르헨티나의 번식지에 온 첫 여름에 번식을 하는지,

처음에는 아르헨티나에서 번식하는 다른 제비 무리에 섞여 생체 리듬에

혼란을 겪게 되다가 한 해를 보낸 후 남반구의 계절에 적응해서 번식을 시작하는지,

북아메리카에서 온 6개월 미만의 어린 새들만 아르헨티나에서 번식하는지,

북아메리카에서 번식한 경험이 있는 어미새도 아르헨티나에서 번식하게 되는지 등등

풀어야 할 질문이 많다.


생체 시계 바꾸기


북아메리카에서 온 제비는

어떻게 자신의 생체 시계 가운데 6개월만큼을 거꾸로 돌릴 수 있을까?


번식기가 끝난 가을(남미의 봄)에 생식기관을 다시 활성화키는 것이 쉬운 일인가?


낮과 밤의 길이에 따라 생체에 반응이 생기는 광주기성 때문에 남아메리카에서 제비의

번식이 시작된 것일까?


남회귀선 이남의 이곳에서만 제비가 광주기성의 영향을 받아 생식선이 자극받고

구애행동을 하며 둥지를 만드는 것일까?



제비는 콘크리트 등 인공구조물에서도 둥지를 잘 짓는 능력이 있어서 인간 주변에서도 비교적 잘 적응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제비는 콘크리트 등 인공구조물에서도 둥지를 잘 짓는 능력이 있어서 인간 주변에서도 비교적 잘 적응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제비들은 왜 이제와서야 남아메리카에서 번식을 시작했을까?


부에노스아이레스주 남부의 평균 기온, 특히 최저기온은 지난 50년 동안 계속 상승했는데,

이것이 제비의 번식을 유도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난 100년 동안 도로 포장과 교량 건설이 증가한 것이 더 큰 원인일 것으로 추측된다.


제비는 조상이 굴 속에서 살다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인간에 적응한 동물로

제비 둥지 가운데 99%이상이 인공구조물에 만들어진다.


영어 이름도 헛간에 사는 제비라는 뜻으로 'barn swallow'다.

세계적으로 제비는 둥지 자리로 콘크리트 교량 하부와 콘크리트 건물의 처마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콘크리트 다리는 1890년대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1930년대 이후 흔해졌다.

그러므로 콘크리트 교량이 광범위하게 만들어진 지 50년 후부터 제비가 이곳에 둥지를 짓고

번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경남 지역의 100여개가 넘는 각급 학교에서 학생들이 동아리를 만들어

지역에 찾아오는 제비를 꾸준히 모니터링하며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오는 제비는 어떤 신비를 품고 있을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밝혀줄 것이기에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Winkler D W, Gandoy F A & 5 others. Long-Distance Range Expansion and Rapid Adjustment of Migration in a Newly Established Population of Barn Swallows Breeding in Argentina. Current Biology 2017

DOI: 10.1016/j.cub.2017.03.006

마용운 객원기자·굿어스 대표 ecoli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