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v.media.daum.net/v/20180120130248732
[S 스토리]
사라지는 마을 흩어지는 동물들.. 재개발사업 '공존'을 부탁해
이창훈 입력 2018.01.20. 13:02
주민들 떠난 뒤 캣맘이 먹이 주고 돌봐 / 시민 1000여명 후원금 2500만원 모아 /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이 동요는 어린이들이 흙장난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다.
어린이들은 흙뭉치를 두드려 집을 쌓으면서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물 길어 오너라. 너희 집에 지어줄게'라고 부른다.
모래흙으로 쌓은 흙뭉치를 두꺼비가 멋들어진 새집으로 바꿔 줄 거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만약 두꺼비가 진짜 나타나 새집을 지어준다면 모래흙으로 쌓은 헌 집은 어떻게 될까.
흙뭉치와 흙뭉치 안에 함께 살던 곤충이나 지렁이는 어디로 갈까.
'둔촌냥이'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에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캣맘'들은
흙뭉치에 살던 지렁이, 곤충과 같이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의 남은 동물인 '길고양이'에
주목하게 됐다.
이들은 주거환경의 개선과 부를 창출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재개발·재건축에
길고양이와의 '공존'이라는 가치를 더하자고 나섰다.
이에 공감한 1000명이 넘는 시민들은 둔촌냥이의 길고양이 보호와 이주비용 마련 등을
위한 '이사 가는 둔촌 고양이' 프로젝트 모금에 2500만원이 넘는 돈을 후원했다.
서울대 태주호 교수(수의학)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수준은 그 사회의 수준을 결정한다"며
"재건축·재개발 지역에 버려지거나 남은 동물에 대한 배려는 동물 복지수준 향상은 물론
재개발·재건축을 투자로만 바라보는 시각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마을이 사라지면, 동물은 흩어진다
19일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서 재건축·재개발을 추진 중인 조합은 653곳이다.
재건축은 아파트를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짓는 것을,
재개발은 노후·불량주택을 허물어 새 아파트를 짓는 것을 각각 의미한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철거를 승인받아 공사를 기다리거나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은 재개발·재건축 지구는 128곳이다.
재개발·재건축 지역의 길고양이·유기동물 문제는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에서 2016년 강남구 개포주공 3단지 아파트의
길고양이 이주 문제에 개입하면서 공론화됐다.
그전까지 재개발·재건축 지역에는 길고양이·유기동물 문제는 대두되지 않았다.
카라와 자원봉사자들은 재건축 조합과 강남구의 협조를 끌어내 철거 공사 현장에서
길고양이를 공사장 밖 인근 지역으로 유도해 70여마리를 구조했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일부 길고양이는
개포주공 3단지로 돌아가려다 로드킬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최근 북한산과 불암산 등 서울 도심 인근 산에 출몰하는 야생화된 들개는
대규모 재개발 지역에 남겨진 개들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포획한 들개 수는 2011년 2마리에서 2016년 115마리로 대폭 증가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은평뉴타운과 길음뉴타운 등 북한산에 인접한 곳에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시작된 뒤로 들개 신고와 포획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며
"야생화된 들개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바람에 시민들에게 상당한 위협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떠난 지역에 남겨진 개들이 살아남아 사람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동구에서 유기동물 발생을 막기 위해 만든 현수막 '엄마! 나도 데리고 이사 가요'가
지난 17일 둔촌주공아파트에 걸려 있다.
이창훈 기자
◆ 재건축·재개발 이후에 남은 동물… 바람직한 이주 방안은?
둔촌냥이와 캣맘들은 은평구 백사마을과 강남구 개포주공 3단지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둔촌주공아파트 길고양이 이주에 필요한 인적·물적 지원과
구체적인 이주안을 놓고 논의 중이다.
이주안으로는 원거리·근거리·입양의 세 가지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둔촌냥이 활동가들은 이주 이전에 중성화사업(TNR)과 고양이 실태 파악에
집중해 왔다.
개체 수 조절과 개별 고양이 특성, 영역 등을 알아야 적합한 이주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TNR는 길고양이 개체 수 증가를 막고 활동반경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어
이주 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길고양이 실태 파악을 담당한 김포도(36·여·가명)씨는
지난해 6월부터 개별 길고양이 사진을 찍으며 건강상태와 TNR 유무 등을 파악했다.
김씨가 작성한 둔촌주공아파트 고양이 지도에 따르면
길고양이들은 1단지(49마리), 2단지(39마리), 3단지(41마리), 4단지(42마리) 등에
나눠서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는
"급식소를 찾는 고양이를 기준으로 헤아렸고, 사진에 찍히지 못한 길고양이까지
포함하면 200여마리 정도 될 것"이라며
"80% 이상이 TNR가 돼 이주 방법만 결정되면 특성에 맞춰서 이주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둔촌냥이 활동가 정미진(36·여)씨는
"기존 캣맘과의 교류를 이어나갈 수 있는 근거리 이주나 입양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며
근거리 이주를 선호했다.
한편 원거리 이주를 주장하는 쪽은
둔촌주공아파트 인근 동네 환경이 길고양이 서식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병길 한국동물표준복지협회 사무총장은
"인근에 왕복 10차선 도로를 끼고 있고 한꺼번에 많은 길고양이가 옆 동네로 옮겨가면
주민들과 마찰도 빚을 수 있다"며
"폐교나 보호소 등을 활용한 원거리 이주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정대 조윤주 교수(애완동물과)는
"이미 사람 손을 탄 길고양이는 안정적으로 먹이를 공급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고양이에게 우호적인 주민들이 있는 곳으로 이주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할 것"이라며
"둔촌주공아파트 이주 사례를 다른 재건축·재개발 지역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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