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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대한민국] (2)
그 아버지에 그 딸.. 검은 거래 못 끊으면 미래는 없다
[경향신문] 이주영 기자
입력 2016.12.12 22:33 수정 2016.12.12 23:37
ㆍ박정희 패러다임, 정경유착의 그늘
‘회장님이 탄 리무진이 청와대 인근 삼청동의 한 주택에 들어선다.
안에선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다.
대통령은 회장에게 문화산업 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회장은 “도와드릴 부분이 있다면 지원하겠다”고 답한다.
며칠 뒤 이 기업은 대통령의 비선 실세가 주도해 만든 스포츠재단에 43억원을 출연한다.
청와대 경제수석은 회장과 함께 온 부회장에게 한 광고회사의 브로슈어를 건네주며
“광고를 할 수 있도록 살펴봐달라”고 한다.
대통령이 “기업에 전달하라”며 준 자료다.
기업은 다른 광고회사와 확정돼 있던 발주 계획을 취소하고
해당 기업에 70억원어치의 광고 일감을 몰아준다.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2016년, 경제규모 세계 11위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이 들어간 지 30년 가까이 흘렀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형식만 존재할 뿐 21세기에도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밀실에서 주고받기를 하는 정경유착이 버젓이 이뤄진다.
경제민주화를 대표 브랜드로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6개월 만에 공약집을 내던졌다.
그리고 재벌 대기업과 뒷거래를 하는 ‘박정희(사진) 패러다임’을 끄집어냈다.
박정희
경제부처의 한 고위 관료는
“대통령이 직접 재벌 총수들을 불러 돈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건
노태우 정부 이후로는 없어졌던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운 걸 그대로 따라 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돈을 내도록 강요하고,
총수들이 774억원을 갖다 바친 이유는 단순하다.
기업들은 가급적 세금 덜 내고 손쉽게 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싶고,
대통령은 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과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경유착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한국의 통치구조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대기업 총수들은
하나같이 “대가를 바라고 출연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윤 창출과 경영권 승계가 최대 목적인 대기업 총수들이
아무런 반대급부를 원치 않고 거액을 내놓았다는 말을 믿을 사람은 없다.
해당 기업들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계열사 합병(삼성),
총수 특별사면(SK·CJ),
검찰 수사 및 면세점 추가 승인(롯데) 등의 현안이 걸려 있던 상황에서
대통령의 호출을 받았다.
검찰은 최순실씨 등에 대한 공소장에서
“요구에 불응할 경우 각종 인허가 등에 어려움을 겪거나 세무조사를 당하는 등
기업활동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불이익을 입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기업들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됐다”고 적었다.
정부가 인허가권과 세무조사 칼자루를 쥐고 기업 길들이기를 하는 건
개발독재 시대의 산물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말로는 창조경제라 하지만 정부 주도-재벌 중심인 박정희식 모델에서
근본적으로 바뀐 게 없다”며
“재벌, 관료, 일부 정치인을 중심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박정희 레짐(체제)’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경유착의 역사는 한국 경제 발전사와 다름없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자원도, 기술도 없이 출발한 산업화는
값싼 노동력과, 소수 대기업에 특혜와 이권을 몰아주고 ‘낙수 효과’를 기대하는
대기업 위주의 성장 전략으로 가능했다.
금융시장이 척박하고 모방을 통한 추격형 성장을 하던 시절에는 이 방법이 통했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일정 수준으로 성장한 1990년대 들어선 한계에 달했고
오히려 총수 일가의 일탈, 양극화, 노동시장 분절 등 부정적 측면들이 부각됐다.
보수진영에서조차 “낙수 효과는 더 이상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익숙하고 쉬운 길을 택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3년 5월 시작한 무역투자진흥회의(무투회의)는
박정희 정권에서 시행했던 수출진흥확대회의를 리모델링한 것이었다.
무투회의는 규제 완화 등 대기업들의 민원을 들어주면서
뒤로는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을 요구하는 등 기업을 압박하는 통로로 활용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정희 패러다임은 더 이상 성장률을 높이지도, 고용·투자를 창출하지도 못한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1990년부터 2014년까지 국민소득 중 가계소득의 비율은 70.1%에서 61.9%로 8.2%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이 기간 기업소득의 비율은 17.0%에서 25.1%로 8.1%포인트 증가했다.
기업이 만들어낸 부가가치 중 임금, 이자, 배당과 같이 가계소득으로 분배돼야 할 몫이 줄어들고
기업소득의 몫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현 정부 들어 무투회의가 10차례나 열렸지만,
공장 10곳 중 3곳은 멈춰서 있을 정도로 제조업 평균가동률(10월 70.3%)은
외환위기 수준으로 떨어졌다.
청년 실업률은 10%에 육박하고,
한때 경제 성장을 견인했던 조선·철강·해운·건설 등 주력업종들은 구조조정에 직면했다.
오히려 정경유착에 따른 경제·사회 시스템의 왜곡은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고 있다.
‘촛불 정국’에서 ‘재벌도 공범’이라는 구호가 크게 울린 건
더 이상 돈과 권력 간 검은 거래, 공정하지 못한 룰, 소득 불균형을 참지 못하겠다는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보수 정부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를 얘기하면서도
중소기업은 빈사 상태로 놔둔 채 사실상 재벌 몰아주기를 해왔다”며
“최순실만 잡아넣는다고 정경유착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정부의 정책 패러다임을 대기업 중심에서 복지와 중소기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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