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에 들어서면, 전직 대통령도 재벌도 중압감에 짓눌렸다
중수부 폐지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대검 1120호 ‘VIP 특별조사실’의 특별한 손님들
경향신문 장은교 기자
입력 2014.02.14 22:03 수정 2014.02.14 22:31
2009년 4월30일 오후 1시21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현관 앞.
김해 봉하마을에서 출발해 5시간을 달려온 청와대 의전버스가 도착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렸다.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대검 중앙수사부의 조사를 받을 예정인 노 전 대통령은
기다리던 수백명의 기자들에게 "면목없다"는 말을 남기고 청사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10시간 넘게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뒤 귀가했다.
노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은 곳은 '대검 1120호 특별조사실'.
노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조사를 받은 후 한달이 안된 5월23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특별조사실의 '마지막 방문객'으로 기록됐다.
지난 12일 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모습.
하얀 점선 부분이 대검 중수부 'VIP 특별조사실(1120호)'이다.
지난해 대검 중수부 폐지와 함께 용도가 사라진 특별조사실도 이젠 밤에 불이 켜지는 일이 없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거물의 부패사건을 다루던 대검 11층
대검 11층에는 14개의 조사실이 있다.
전직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 대기업 회장 등 거물들의 부패 사건을 전담수사한 대검 중수부가 사용하던 곳이다.
그중 가장 주목을 받은 곳은 1120호 특별조사실이다.
'VIP 특별조사실'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는 이 방은 대검 중수부가 수사한 사회 고위인사들 중에서도
거물 중의 거물이 조사를 받는 전용장소로 사용됐다.
노무현·노태우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 2명, 정주영·최종현·김우중·손길승 등 재벌 총수들,
노건평·김현철·김홍업씨 등 대통령 친·인척 등 거물들이 이 방을 거쳐갔다.
지난해 4월 대검 중수부가 폐지된 후 11층 조사실도 완전히 문을 닫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스스로 중수부의 간판을 내린 후 실제 직제상 중수부가 사라지기까지는
7개월여의 시간이 더 걸렸다.
법무부와 안전행정부는 논의를 거쳐
지난해 11월 중수부를 공식 폐지하고, 일선 특별수사를 총괄하는 부서로 '반부패부'를 창설했다.
대검의 직접 수사기능이 공식적으로 사라지면서 '쓸모'가 없어진 11층 조사실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도
곧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대검은 "교육장이나 사무실 등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 일각에서는 조사실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해 박물관처럼 보존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반면 수사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공간인 만큼 전문조사실로서의 기능을 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수도권 지검의 한 특수부 검사는
"중수부가 없어도 대형 사건 수사는 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외부에 사무실을 얻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수사보안 등을 고려했을 때 전문조사실을 잘 활용하는 게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감찰 강화 기조에 맞춰 대검의 감찰 전문 조사실로 활용하는 방안과 수사 범위가 넓어진
서울중앙지검의 조사공간으로 쓰자는 의견도 있다.
대검 중수부 'VIP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는 거물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1997년), 신승남 전 검찰총장(2002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2003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2005년). | 경향신문 자료사진
■ 심리전문가 동원해 꾸민 '맞춤' 조사실
대검의 특별조사실은 대검 청사가 1995년 서울 서소문에서 서초동으로 옮긴 후부터 있었다.
특별조사실은 서울중앙지검에 먼저 생겼다.
그러나 2002년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수사관에게 폭행을 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후 여론이 악화되면서 사라졌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마약사건이나 조직폭력배 사건 등을 수사할 때는
일부 가혹행위가 있었다"며
"특수사건 피의자를 조사할 때 일부러 강력부와 형사부 조사실 가운데 방에서 대기하게 하면
양옆에서 나오는 비명소리에 놀라 몇 시간 후 자연스럽게 자백을 받는 효과도 있었다"고 했다.
지금 서울중앙지검에는 별도의 특별조사실이 없고, 검사실이 조사실로 사용된다.
그러나 사회고위층을 상대하고 여론의 주목을 받는 수사를 하는 중수부에서는
고문이나 폭행이 발생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대검의 특별조사실은 존치됐다.
대검 11층 조사실은 2008년 초 리모델링을 거쳐 개조됐다.
2007년 말 건물보수용 예산이 남자, 중수부에서 조사실 리모델링을 건의했고 어렵게 받아들여졌다.
현대차·론스타 사건(2006년) 수사를 거치며 조사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한 끝에 나온 의견이었다.
이때만 해도 5년 뒤 중수부가 없어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리모델링은 2007년 12월부터 2008년 4월까지 넉달 동안 진행됐다.
조사실 개조 작업은 꼼꼼하고 치밀한 연구를 통해 진행됐다.
최적의 수사를 위해 구조부터 바닥재, 벽지, 조명까지 다 바꿨다.
노란빛을 띠던 아이보리색 벽지는 카키색과 회색빛을 더한 다소 어둡고 침착한 톤으로 바꿨다.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면서도 적당한 위압감을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색깔이었다.
당시 벽지 선정을 위해 색깔 심리전문가의 자문도 구했다.
검찰의 요청을 받은 인테리어 업체가 준수사전문가 수준으로 고심하며 함께 작업했다고 한다.
벽지 작업은 1차 작업 후 예상과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는 판단에 따라 다시 뜯어내고
2차 작업을 할 만큼 공을 들였다.
바닥재도 다른 사람들이 이동하는 소리 때문에 조사가 지장을 받지 않도록 발소리의 충격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꿨다.
조명도 형광등에서 보다 눈을 편하게 하는 것으로 바꿨다.
조사실 안은 자살 방지를 위해 무언가 걸 수 있는 모든 '고리'를 없앴다.
문고리도 아무것도 걸 수 없는 형태로 바꿨다.
벽에는 못 자국 하나 없도록 조치했다.
그림이나 시계 등 일체의 장식물도 없앴다.
대검의 창문은 전 층이 의자를 던져도 깨지지 않는 강화유리로 만들어졌다.
특별조사실은 대검 11층의 오른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56㎡(약 16평)로 조사실 중 가장 넓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9개였던 조사실을 14개로 늘리면서 특별조사실의 공간도 약간 줄었다.
당초 방 번호는 1113호(65㎡·약 20평)였으나 리모델링 후 방 번호가 1120호로 바뀌었다.
조사용 책상과 소파, 싱글 사이즈의 간이침대, 변기와 세면대가 있는 화장실이 갖춰져 있다.
화장실이 조사실 안에 있기 때문에 장시간 조사를 하더라도 복도에서 다른 사람과 마주칠 위험이 없다.
샤워실과 수면실이 따로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잘못 전해진 정보다.
샤워실과 수면실은 밤을 새우며 일하는 검사와 수사관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특별조사실의 조사 과정이 중수부장과 수사기획관 방으로 실시간 영상중계되도록 고안됐다.
중수부장은 조사실에는 나타나지 않고 영상중계로 조사상황을 보면서 직접 조사하는 검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11층 조사실을 개조할 때 가장 신경 쓴 것 중 하나는 '보안'이었다.
수사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조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수사상황이나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11층 조사실의 창문에는 전동블라인드가 설치됐다.
11층에 불이 켜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취재진들은 근처 건물에서 망원 렌즈를 당겨 11층 조사실 창문 밖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이나 피사체를 촬영해
'사진 특종'을 하기도 했다.
전동블라인드는 각 방에서 조절할 수 있고 외부의 빛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다.
대검 청사는 건물 전체를 한 곳에서 통제하는 중앙난방식이지만 11층만은 냉난방을 따로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평소에는 쓰지 않던 11층 조사실에 냉난방이 필요하다는 것도 수사기밀 사항이다.
출입통제시스템도 따로 갖췄다.
11층 엘리베이터 앞에 내리면 층 전체를 가로막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다.
원래 철문으로 돼있던 것을 스크린도어로 바꿨다.
등록된 사람들이 지문을 인식하거나 비밀번호를 입력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안에서 밖으로 나올 때도 마찬가지 절차를 거쳐야 한다.
피의자가 조사를 받던 중 조사실을 뛰쳐나와도 나갈 수 없다.
비밀번호는 주기적으로 변경하고 소수의 사람만 공유했다.
스크린도어를 통과해도 복도를 지나 조사실까지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러 문을 통과하도록 했다.
조사실은 모두 이중문으로 한번씩 더 문을 열고 들어가도록 했다.
당시 중수부에 있었던 한 검사는
"집에 돌아가려면 이렇게 많은 문을 다시 열고 나가야 하겠지"라는 심리적 압박감을 주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고 했다.
복도의 너비와 구조도 '수사심리'를 고려해 만들어졌다.
너무 넓은 복도보다는 적당히 좁은 것이 심리적인 위축감을 줄 수 있다는 의견에 따라
폭을 조정하고, 양분했다.
건물 개조과정에 참여했던 한 검사장은
"중수부에서는 누가 조사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수사보안인데 하나로 된 복도를 지나다 보면
사건관계자들끼리 마주칠 가능성이 있어 일부러 동선을 분리했다"고 말했다.
다른 층에는 복도에 1~2개 정도인 폐쇄회로(CC)TV도 좁은 간격으로 설치해 늘렸고,
조사실마다 CCTV를 여러 개 설치했다.
■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된 곳" 회자
특별조사실에서 누가 조사를 받을 것인지 결정하는 데 뚜렷한 기준은 없었다.
양형기준상 징역 몇 년 이상의 범죄라든지 뇌물·횡령·배임액 얼마 이상의 혐의를 받는다든지 하는 기준이 없다.
조사대상은 전적으로 검찰총장과 중수부장이 협의해 정했다.
사회고위인사라고 특별대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비판 의견도 있었다.
중수부 출신의 한 중견 검사는
"고위공직자나 대기업 회장 중에는 처음부터 피의자 신분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다가 나중에 '신분'이 바뀌는 경우도 많았다"며
"혐의가 확정되기 전이라는 점을 고려해 그 정도의 사회적 예우는 필요하다고 봤다"고 전했다.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은 사람들은 보통 대검 현관 1층에서 취재진 앞에 서는 '포토타임'을 거친 뒤,
7층 중수부장 방에서 간단히 '다담(茶啖)'을 나눴다. 그리고 11층으로 올라가 본격적인 조사를 받았다.
특별조사실에는 많은 거물들이 다녀갔다.
1995년 11월1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벌들로부터 거액의 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조사에 앞서 안강민 당시 중수부장과 15분간 대추차를 마시며
"내가 재임할 당시 대검 신축공사가 시작됐는데 내가 이 건물에서 조사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노 전 대통령은 17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새벽 3시가 넘어 귀가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던 검사가 김진태 검찰총장이다.
김 총장은 조사를 시작하며 넥타이를 한손으로 힘껏 풀어 돌리는 제스처를 취했다고 한다.
'일개' 검사가 전직 대통령을 조사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기선 제압'이었다.
안 전 중수부장은 나중에
"소파가 아니라 책상에서 조사했다. 특별대우는 없었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아들들도 조사실에 왔다.
1997년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인 현철씨가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고 구속기소됐고,
2002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홍업씨가 청탁 대가로 돈을 받아 구속기소됐다.
특별조사실은 현대·SK그룹과도 각별한 악연을 맺었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으로 조사를 받은 데 이어
2003년에는 정몽헌 전 현대아산그룹 회장이 현대비자금 사건으로 조사를 받았다.
정 전 회장은 대북송금특검을 받은 뒤
비자금 사건으로 중수부 조사를 받았는데, 두번째 조사를 받은 이틀 뒤 사옥에서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2006년 현대차·론스타 사건 때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사장은 특별조사실이 아닌 1110호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를 두고 정 회장 등에게 과거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지 않으려는 조치라는 분석도 나왔다.
방 번호 1113호 시절의 마지막 손님은 2005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2008년 특별조사실 개조 후 1120호에서 처음으로 조사를 받은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다.
건평씨는 2008년 12월 세종증권 인수과정에서 힘을 써주는 대가로 30억원을 받은 혐의로 대검에 출두해
12시간 넘게 조사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 가문과 1120호의 인연은 얄궂게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은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은 마지막 피의자가 됐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중수부는 피의사실공표 등의 문제로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큰 비판에 휩싸였다.
중수부는 2012년 마지막 사건으로 '저축은행 비리'를 수사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은 특별조사실이 아닌 중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특별조사실이 주는 특별한 중압감은 피조사자들에게도 두고두고 회자됐다.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던 한 기업인은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된 곳"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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