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외동딸, 미국서 파란만장한 삶 마쳐
머니투데이2011.11.29 15:16 수정 2011.11.29 15:16
뉴스 입력 [ 뉴스1 제공](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옛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외동딸 라나 피터스가
향년 8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AP통신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위스콘신주 남부의 리칠랜드 카운티의 메리 터너 검시관은
"지난 22일 위스콘신주에 거주하던 피터스가 대장암으로 숨졌다"고 이날 발표했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과 외동딸 스베틀라나 AFP= News1
피터스는 스탈린의 두번째 부인 나데즈다 알릴루예바가 1926년 낳은 딸로
본명인 스베틀라나로 더욱 유명하다.
1932년 어머니 나데즈다 사망후 유모의 손에 양육된 스베틀라나는
남자형제 바실리니와 제이콥 사이에유일한 딸로서스탈린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하지만 스탈린의 딸에 대한 사랑이 지나쳤던 것일까. 스베틀라나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16세에 영화제작자 알렉세아 카플라와 사랑에 빠지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결국 파경을 맞이한다.
카플라는 사랑의 대가로 10년간 시베리아 유형을 떠났다.
17세의 스베틀라나는 스탈린이 정해준 그리고리 모로조브와 결혼하지만
1947년 이혼했고 다음 정혼자 유리 쟈도브와도 결국 이혼하고 만다.
그는 이어
인도 공산당원이던 브라제시 싱과 사랑에 빠졌지만 폐기종을 앓던 싱마저1966년 그의 곁을 떠났다.
이듬해 인 1967년 스베틀라나는 싱의 유해를 들고 인도를 방문한다.
그 곳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 역전이자 당시 굳어지던 냉전시대의 하나의아이콘으로 떠오르는
대사건의 주인공이된다.
1953년 스탈린 사망후
고국 소련에서 벌어진 반(反)스탈린 운동속에 어머니 성으로 바꾼 스베틀라나가
제발로 인도주재 미국대사관을 찾아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것이다.
이후 스위스에서 잠시 머문 후 미국생활을 시작한 그는
소련에서 생활을 담은 '친구에게 보내는 20통의 편지'라는 자서전을 출판하는 등
소련을 공개적으로 비방하는 활동도 펼쳤다.
스베틀라나는 미국에 온 동기에 대해
"소련에서 오랫 동안 허용되지 못한 자기 표현의 방식을 찾기 위해 여기 왔다"고 말했다.
또 "어린 시절 배웠던 공산주의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며 종교에 대한 믿음도 찾았다고 밝혔다.
그는저서에서 자신의아버지 스탈린를 편집증적인 남성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또 지난 2010년 위스콘신저널과 인터뷰에서는 스탈린을 "잔인하고 무례하며 단순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망명은 3번의 결혼생활에서 태어난 자녀들과의 생이별을 의미했다.
이후 근대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제자인 윌리엄 웨슬리 피터스와 결혼한 후
이름을 라나 피터스로 바꾸고 딸 올가를 낳았지만 또 다시 결혼생활에 파경을 맞는다.
이후 영국에서 2년간 생활하던 피터스는 1984년 58세의 나이로 딸 올가와 함께
아버지의 고향 그루지야로 다시 망명해 미국과 영국에서 생활이 자유롭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1년도 채 되지 못해 인척간 불화로 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은둔생활을 하며 지내다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크레제 에반스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딸 올가는
AP통신과의이메일 인터뷰에서 "애도기간을 존중해주기를 바란다"는 짤막한 답변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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