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한참 사용하지 않았더니 날짜가 정확히 24시간이 늦게 기록되었군요...
8일 오전 11시 목포 버스터미널 도착.
목포 버스터미널에 내려서 복산님께 연락을 드리니 반갑게 맞이하여 주시며
유달산을 안내하시는 도중에 다산목을 구경시켜 주셔서... 기념컷.
바로 이곳이 제가 태어난 箕山마을의 입구입니다.
어려서 수영하며 놀던곳, 영수정...
어느해 장마비에 떠내려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느다란 두 줄기가 위로 비스듬히 기우린채 떠내려 갈 듯한 불안스러웠던 모습이 기억된다.
어언 4~50년이 되는것 같다.
조금 멀리서 두 그루의 수양버들 촬영...
물 가운데서 자란 수양버들... 군 지정 보호수로 기록되어 있군요.
좌측의 수양버들의 수령은 대략 110년, 중앙에 서있는 수양버들이 위의 사진입니다...
조금 더 멀리서 영수정 전경을 촬영해 보니...
우측의 도로는 서해안 고속도로가 나면서 진입로 건설과정에서 만들어진 도로인것 같다.
나 어려서는 강폭이 엄청이나 넓어 보였었는데, 반쪽으로 줄어든 느낌이든다.
수영으로 강을 건널때는 물살 때문에 가로지르며 수영해야만 건널 수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우측 도로 끝쪽에 영파정이 있다.
어려서 보았을때 이 영파정에서 활쏘기 연습을 하시는 어른들을 자주 보았다.
화살은 강 건너편에 커다란 과녁판이 세워져 있었고,
과녁판 뒤에서 깃발로 신호를 하시는 분도 있었다...
아래에 영파정의 모습을 촬영해 왔다.
영파정(전라남도 문화재168호)
영파정은 단종3년(1455)에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보위에 오르려는 계획을 세우자 함평출신 영파 이안(1414~?)이
이를 반대하여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지은 정자라고 한다.
영파정을 지나니 기산마을 노인정이 세워져있군요.
뒤로는 기산봉 정상이 보입니다...
아래 사진들은 마을 전경을 몇컷 촬영하고...
이곳은 내가 태어난 동네.
아래 사진은 기산봉 정상에 오를려고 하니 옛길이 없어져서...
아쉽지만 뒤 돌아서서 보니,
서해안 고속도로 진입로 넘어로 멀리 보이는 대동면 향교리...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대동면소재 학생들을 분리시켰던 향교초등학교 자리가 보인다.
고향에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드뇨
두견화 피는 언덕에 누워 풀피리 맞춰불던
내동무여 흰구름 종달새에 그려보던 청운의 꿈을
어이 지녀가느냐 어이 새워 가느냐
산은 옛산이로되 물은 옛물이 아니로다
실버들향기 가슴에 안고 배띄워 노래하던
옛동무여 흘러간 굽이굽이 적셔보던 야릇한꿈을
어이 지녀가느냐 어이 새워 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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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파정 [潁波亭]
![](http://dicimg.naver.com/100/400/35/73335.jpg)
↑ 영파정 /
전남 함평군 함평읍 기각리.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8호.
이안이 단종의 폐위를 보고 낙향하여 정자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영파정이라 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영수정이라는 이름으로 복원되었으나,
현재의 영파정으로 중건되었다.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기각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각.
지정종목 | 문화재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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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 전남문화재자료 제168호 |
지정일 | 1988년 12월 21일 |
소재지 |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기각리 906-2 ![]() |
시대 | 조선 |
종류/분류 | 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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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파정 (潁波亭)
영파정은 단종3년(1455)에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보위에 오르려는 계획을 세우자
함평출신 '영파' 이안(1414~?)이 이를 반대하여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지은 정자라고 한다.
수양대군(首陽大君)
1428년(세종 10) 진평대군(晉平大君), 1432년 함평대군(咸平大君)에 책봉되었다가
이해 7월 진양대군(晉陽大君)으로, 다시 1445년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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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68호로 지정되었다. 이안(李岸:1414∼?)이 단종의 폐위를 보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조그마한 정자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영파정이라 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영수정이라는 이름으로 복원되었다. 1820∼1821년 권복(權馥)과 김상직(金相稷)에 의해 현재의 영파정으로 중건되었고, 1843년(헌종 9) 군민의 강무와 사례를 위한 건물로 활용되었다. 그뒤 1883년 대대적으로 보수했고 1966년 일부 보수했다. 좌측·우측 1칸만을 온돌방으로 꾸미고 나머지는 모두 우물마루를 깐 대청으로 꾸몄다. 기단은 막돌허튼층쌓기 구조로 주춧돌은 원형으로 다듬어 놓았다. 전면에만 창방과 주심도리의 장혀 사이에 기둥 사이마다 4구씩의 소로 받침을 두었다. 공포는 초익공식이나 쇠서밑으로 짧은 촛가지를 하나 더 내었다. 도리는 모두 장혀받침 굴도리를 사용했으며, 양측면의 중심기둥은 대량 위로 충량을 걸었다. 창호는 대청 후면과 측면을 쌍여닫이 판장문을 설치하고 전면은 열개문이었으나 지금은 유리가 끼워져 있다.
[출처] 영파정 [潁波亭 ]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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