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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밭이 호화 도심으로…강남 40년 스토리

기산(箕山) 2010. 12. 30. 01:59

배밭이 호화 도심으로…강남 40년 스토리

                                                                                          한국경제 | 입력 2010.12.29 18:33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강남 발전사 입체 조명


6 · 25전쟁 직후 124만명이던 서울 인구는 1960년 244만여명으로 늘어났다.

 

경제개발 정책으로 산업화,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서울 인구는 1965년 347만명,1970년 543만명을 넘어섰다.

인구폭발이라고 할 만한 증가세였다.

 

강북 도심의 팽창과 과밀화는 심각한 주택 부족 현상을 초래했고,

도심 주변과 한강변 개발로도 이를 해소하지 못해

결국 한강 건너 영동(永東) 지구로 넘어가게 됐다.

강남 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 강남이라고 불리는 강남 · 서초구 일대는

1970년대 이전만 해도 '영동''남서울' 등으로 불렸다.

 

영동이란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뜻.

자체 지명을 갖지 못한 채 특정 지역과의 지리적인 관계 속에서 이름이 결정될 만큼

위상이 낮았던 미개발지였기 때문이다.

40년 전 한적한 농촌이던 '영동'이

국내 최고의 번화한 '강남'으로 변화한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전시회가 개막됐다.

 

29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막을 올린 '강남 40년:영동에서 강남으로' 특별전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서울 반세기 종합전'의 두 번째 전시로 마련한 이번 특별전은

1970년 이후 급성장한 강남 형성사를 조명하는 자리다.

1960년대 강북의 폭발적인 팽창과 1969년 제3한강교(한남대교) 개통

1970년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강남은 유례 없는 대규모 개발 사업지대로 변모하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땅값 급등, 부동산 투기,흥청거리는 밤 문화,

'8학군'으로 상징되는 입시 과열 등의 많은 신풍속도와 사회현상을 낳았다.

이번 전시는 강남이 형성된 과정과 현재의 강남을 다양한 이미지와 스토리로 비교하고 정리한다.

개발 이전 한적한 시골이던 '영동'의 모습과 넘쳐나는 강북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남서울계획''새서울백지계획' 등 강남 개발에 대한 구상,

강남 개발을 촉발시킨 제3한강교와 경부고속도로 개통,

강남 개발이 본격화된 영동지구 토지구획 정리사업과 공무원아파트 건설,

공공기관 및 학교 이전,

고속버스터미널 건설,

지하철 2호선 건설 등 개발과 건설 과정을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를 선보인다.

배밭 뒤로 불쑥 솟아오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생활하수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길옆 도랑으로 오수를 흘려보냈던 1980년대 잠원동,

밭농사에 한창인 1980년대 초반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주변 등의 사진이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아울러 이 같은 변화를 하늘과 땅에서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순서도 마련한다.

지도와 항공사진을 통해 강남의 도로와 건물,주거지,공원 등의 형성 과정,

건물 층수와 노후도, 건축물의 용도,필지의 크기,주택가와 상업지구 등이

어떻게 구성되고 형성됐는지 그래픽과 영상으로 설명한다.

'땅에서 본 강남' 코너에는 현재 강남의 다양한 이미지를 모았다.

강남의 긍정적 · 부정적 이미지를 가감 없이 담는다는 뜻에서 강남의 낮과 밤 풍경,

테헤란로 · 강남대로 등 대표적인 대로(大路),

고속버스터미널 · 강남역 · 코엑스 등의 지하도시,

대치동 학원가,신사동 성형외과,청담동 명품거리,압구정동 로데오거리,

말죽거리, 양재천, 구룡마을 등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