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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물(多勿)'은 '되물린다', '되찾는다', '되돌려 놓는다'는 의미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이 말은 '뺏겼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다물'이란 말이 우리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고조선의 역대 단제(檀帝)중 BC590년에서 BC545년까지 재위했던 제38대 단군 '다물'로 동북아 대륙의
주인공으로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면서부터였다.
이어 BC58년
북부여의 7대 단군이 된 고주몽은 "고조선의 영토와 문화를 회복한다"는 취지에서 연호를 '다물'이라 하고 최초로 회복한 땅을 다물도(多勿都)로
이름지었음이 《삼국사기》《고구려본기》와 중국의 사서인 《자치통감》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뒤 이 다물정신은 서기 244년 백제 고이왕 때부터 시작된 백제의 대륙경략과 일본진출로 이어졌음이 중국의 사서인
《25사(二十五史)》<조선전><백제편>에 수 십차례 기록되어 있고, 고구려 멸망 후에는 후손인 대조영에 의한 발해의 건국정신으로
계승되었음이《발해고(渤海考)》《구당서(舊唐書)》《속일본기(續日本記)》등 한중일 여러 역사서에 뚜렷히 나타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고려 태조 왕건은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국호를 고려로 하였고 (고려사 제 1권 제1장), 그런
까닭에 건국직후부터 1388년 위화도 회군까지 시종일관 고구려 옛 땅
수복을 위한 북진정책을 끈질기게 추진하였다.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의 요동정벌론, 세종대왕의 4군6진 개척, 효종대왕의 거대한
북벌정책추진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고, 일제 강점기에는 신채호, 배천택 선생등에 의한 '조선상고사 찾기' '대고구려주의 주창' 과
'다물단조직'으로 이어져 가장 강력한 독립운동의 정신적
근원으로 살아 숨쉬어 왔다.
따라서 이 '다물정신' 이야말로 수천년간 대륙과 바다를 호령해온 우리민족의 기상이며, 동시에
숱한 간난과 시련속에서도 대륙강토회복과 역사복원을 염원하는 민족혼의 맥이라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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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한민족의 9200년 국통맥 (KBS역사스페셜,환단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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