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고문하는 미적분..'줄이거나 없애야'
한겨레 입력 2015.08.16. 20:10
[한겨레]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 설문조사
91% '미적분 선택과목 전환 찬성'
"이과 미적분2, 대학 선행학습 불과
문과 미적분1, 개념교육으로 축소"
일부 수학 전문가 '현행 유지' 의견
"수학적 사고력 키우는 데 중요해"
'대입 끝나면 쓸 일도 없는데 문과에서 왜 미적분Ⅰ이 필수인가?'
'대학 가면 어차피 다시 배우는데 이과에서 왜 미적분Ⅱ가 필수인가?'
학생과 학부모를 비롯해 많은 일반인이 평소 한번쯤 품었을 법한 의문이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인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사교육걱정)'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1%가 최소한 문과에서 미적분Ⅰ을, 이과에서 미적분Ⅱ를 선택과목으로 바꾸자는 데 찬성했다.
반면 수학 전문가들은
"수학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 미적분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며 '현행 유지'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양쪽의 팽팽한 대립 속에 흐지부지돼온 이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교육운동 차원에서 논의되던 '고교 미적분 축소'에 고개를 끄덕이는 수학 교수와 교육과정 전문가들이
최근 들어 부쩍 늘고 있어서다.
박제남 인하대 수학교육학과 교수는 16일
"공대는 미적분이 필수지만 고교 때 미적분Ⅱ를 배우지 않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며
"고교 이과에서 미적분Ⅱ 과정을 없애자"고 제안했다.
수학 전문가들은
미적분Ⅰ이 개념(최적화) 교과라 수학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 효과가 크지만,
미적분Ⅱ는 일종의 테크닉(계산을 위한 미분법·적분법) 과목이라 고교생한테 꼭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게다가 대학 이공계 교육과정을 고려할 때,
현행 미적분Ⅱ는 대학 1학년 교과의 선행학습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많다.
공대는 미적분이 공학인증 필수과목이어서 대학 1학년 때 미적분학 1·2를 이수해야 한다.
국내 대학 대부분은 미적분을 두 과목으로 나눠 한 한기 3학점(한 학기 동안 일주일에 3시간)씩
6학점을 가르친다.
다른 나라도 미적분이 공학인증 필수 과목인 건 마찬가지다.
미국 대학들은 미적분을 세 과목으로 쪼개 4학점씩 12학점이나 가르친다.
미적분을 대학 수업에서 제대로 가르치므로 고교에선 필수가 아닌 선택과목으로 둔다.
다만 고교 때 미리 미적분 수업을 들으면 대학에서 학점을 인정해주는 선이수제도(AP)가 마련돼 있다.
대학 때 등록금과 시간을 절약하고 싶은 고교생들이 미적분을 선택적으로 수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박제남 교수는
"한국 공대에선 (고교에서 앞서 배우다 보니) 대학에서 가르쳐야 할 미적분을 속성으로 가르친다.
결과적으로 공대 교수들이 미적분Ⅱ를 고교 교육과정에 떠넘기는 셈"이라며
"우리도 미적분 두 과목을 4시간씩 8시간 정도 가르치면 공대 교육과정을 크게 흔들지 않고서도
고교에서 미적분Ⅱ를 없앨 수 있다"고 진단했다.
문과에서 미적분Ⅰ을 가르쳐야 하느냐 마느냐 문제는 이과의 미적분Ⅱ 논란보다 훨씬 복잡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난해한 문제 풀이 위주의 미적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데에는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사교육걱정은
"미적분이 수학적으로 아무리 중요해도 배우는 학생이나 일반 시민이 필요성을 못 느낀다면 재고해야 한다"고 짚었다.
노석태 부천계남고 수학 교사도
"수능에서 최고점인 4점짜리 문제 중에 미적분이 많은데 이를 풀려면 배워야 할 내용이 너무 많고 어렵다.
고난이도 문제를 맞추려는 기술적 미적분 대신 기본 개념 위주로 가르치면 아이들이 겁먹고 포기하는 일도 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문과 미적분 필수'를 주장하는 쪽에선 대학 경상계열 학습과정에 미적분이 필요하다는 논거를 댄다.
이에 대해 사교육걱정은
"대학에서 한두달 정도 미적분을 지도하면 전공과목을 이수하는 데 무리가 없고,
본인이 희망하는 학생들은 2015 교육과정의 고교 선택 과목으로 신설되는
경제수학을 골라서 배우면 된다"고 밝혔다.
수학 교사들은
미적분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문과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최소한 지금의 수학 교육과정보다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서울 강남의 한 고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최아무개 교사는
"강남에 있는 학교인데도 꽤 많은 문과생이 초등 고학년 때부터 수학과 담을 쌓고 올라온다.
미적분Ⅰ이 대단히 어렵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렵고 쉽고를 떠나서 문과에는 아예 미적분을 시작할 '수학의 기본'이 안 돼 있는 학생이 너무 많다"고
현실을 전했다.
반면 아무리 문과라도 미적분 없는 수학은 상상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도 많다.
박제남 교수는
"미적분은 최단거리나 최소시간처럼 어떻게 하면 '최적화'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론이다.
어렵더라도 문과든 이과든 교양 차원에서 기본 개념 정도는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제남 교수는
미적분을 기본 개념 위주로 가르치기 위한 보완책으로 지금보다 양을 줄이고 실생활 사례를 많이 포함시키는
방안을 제안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수학 연구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학과 교수는
"이번 교육과정에서는 미적분을 삭제하라는 일반 여론과 미적분을 강화해도 부족하다는 수학·과학기술계의
상반된 의견을 절충해 담았다"고 설명했다.
대학에서처럼 '수학적 엄밀성'을 추구하는 미적분 대신에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한 수준의 미적분을 도입하겠다는 설명이다.
전정윤 기자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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