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유령작가'가 밝히는 비화 "그가 날 선택한 이유"
미디어오늘 | 입력 2010.08.06 17:44 [미디어오늘 김수정 기자 ]
[인터뷰] '김대중 자서전' 집필 김택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세도우 라이터(shadow writer).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그림자 작가'다.
자서전 등 다른 사람의 글을 대신 써주는 사람이다. 유령 작가(ghost writer)라고도 한다.
다른 사람의 글을 대신 써주는 '이름 없는 작가'다.
한국에서는 아직 '세도우 라이터'가 생경하다.
주로 기업인들이나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의 자서전을 대신 써주는 일이 많다.
당연히 이들의 이름은 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이름 있는 '대필 작가'가 많다.
피카소와 지미 카터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들의 자서전은 대부분 이들 '대필 작가'의 몫이다.
대필 작가가 누구냐에 따라 그 사람의 진가가 달리 평가될 정도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세도우 라이터'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서전을 쓴 유시민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그는 노전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였다. 본격적인 의미의 '세도우 라이터'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29일 발간된 '김대중 자서전'을 쓴
김택근(사진)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본격적인 '세도우 라이터'의 표본이라 할 만 하다.
▲ 김택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치열 기자 truth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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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우 라이터'는 기본적으로 글발이 있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인물에 대한 이해'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세도우 라이터로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택근 논설위원을 선택한 것은 의외다.
왜냐하면 김택근 위원이 그런 제안을 받기 까지
그는 단 한 번도 김대중 전대통령을 직접 만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왜 그를 그의 자서전 작가로 선택했던 것일까?
"지난 2004년 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인 김한정, 최경환 비서관이
'대통령께서 한번 뵙고 싶어 한다'며 찾아 왔다.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는데 두 비서관이 자서전 얘길 꺼내며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깜짝 놀랐다.
한 번 만난 적도 없는데 대통령이 내 글을 읽고 있었다니!
그 뒤 김 전 대통령을 만났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한류에 대해 얘기하셨다.
당시는 대통령 개인에게 고통스러운 때였다. 퇴임 뒤 권력은 없고, 몸은 병들어갔다.
절망에 휩싸여 있을 법도 한데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희망을 얘기했다.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도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안심이 됐다.
김 전 대통령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깊이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전 대통령의 삶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궁금증이 남는다.
왜 김전대통령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일면식도 없는 김택근 논설위원을 굳이 택했던 것일까?
그 실마리는 아마도 그가 김전대통령에 대해 쓴 3편의 칼럼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김택근 논설위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대통령 김대중),
취임 후 1년 때(김대중 대통령께),
그리고 퇴임할 때(할아버지 김대중) 딱 3편의 글을 썼었다.
도대체 어떻게 썼기에 김전대통령이
이 3편의 글을 보고 그를 자신의 일생을 정리할 '작가'로 선정했던 것일까?
김 전대통령의 마음에 쏙 드는 글들을 썼던 것일까?
얼핏 보면 그런 종류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첫 글(대통령 김대중)에서 김 전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했다.
그의 지지자들과 결별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그 글에서 대통령 김대중에게 이제는 지지자들과 '결별'할 것을 주문했다.
그들은 이제 '지지자'들이 아니라, '국민'인 까닭에.
또 인기를 버릴 것을, '인의 장막'을 걷어낼 것을 주문했다.
더 이상 그로 하여금 국민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하기를 소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 1주년 때는
홀로 외로울지언정 결코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흔들리지 말 것을 주문했다.
또 퇴임을 앞두고선
"이제 당신의 역할은 끝났다"며
"이제는 할아버지로 돌아가" 평범하게 살았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했다.
김 전대통령과 함께 "한 시절이 끝나가고 있음을 절감"하면서….
어찌 보면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는 글들이었지만,
대통령 김대중은 그 글에서 그의 '진심'을 읽었던 것 같다.
진정으로 '김대중'이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렇게 자칭 '전직 시인' 김택근과 '전직 대통령' 김대중이 만났다.
그렇다면 김택근 논설위원에게 정치인 김대중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계기로 호감을 느끼게 됐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처음에는 '어떤 인물이기에 정권이 저렇게까지 할까'하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대통령이 돼서 보여준 모습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김대중에 대한 애정이 자리 잡았다.
대통령께서 자서전 집필자로 기자를 선호한 것은 미문을 경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왜 내게 자서전을 부탁했는지 그 이유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유서에
"자서전은 김택근 논설위원에게 일임할 것"이라고 남긴 데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 김대중 자서전 > 작업이 시작됐다.
2006년 7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41차례에 걸쳐 김 전 대통령의 구술을 녹취했다.
이를 정리하니 200자 원고지 5600장 분량에 달했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글도 읽었다.
이를 갈무리한 것은 두 달여 전.
1부 집필을 마치고, 2부 집필을 하는 동안 김 전대통령이 서거했다.
박영숙 미래포럼 이사장이 낭독했던 추도사와 지석 문안도 그의 몫이었다.
언론에 공개된 김 전대통령 일기 일부도 그가 발췌한 것이었다.
그는 장례를 끝내고서야 참 많이 울었다고 했다.
한 시대의 마감을 목도하면서….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전을 계획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 투병 이후 서거할 때까지의 70여 일은 자서전에 담기지 않았다.
김 논설위원은
"옆에서 지켜봤으니 그것을 채워야 하지 않겠느냐"며 "인간 김대중의 모습을 담아보고 싶다"고 했다.
김 논설위원은 자신을 '김대중을 사랑한 기자'라고 부르는 것에 불만이 없다고 했다.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살면서도 현실을 비켜서지 않았던 김대중을 그는 참 많이도 사랑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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